찌질이와 샛서방
찌질이와 샛서방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7.0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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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지난 중에 북한 말과 남한의 말을 비교했더니 반응이 참 좋았다. 계속해서 써 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지금은 우리말의 어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이라 몇 번 더 어원 중심의 글을 쓰고 이어서 남·북한의 언어를 비교하기로 약속한다. 지난 중에는 머저리에 관해서 썼는데, 그 의미가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민간어원설인 넌더리 등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오늘은 먼저 찌질이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 ‘찌질이’라는 단어는 발생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강조하는 의미로 어두의 자음을 된소리로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찌질이는 이미 다 알고 있듯이 ‘소속된 집단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오픈사전>을 보면 ‘왕따가 아니라 노는 애도 아니면서 노는 척 하는 아이들, 또는 노는 애들 주위에서 노는 척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비속어이다. 결국 표준어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정도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면 표준어가 될 법도 한데 아직은 아니다. 언젠가는 표준어의 대열에 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단어다.

한편 ‘지지리’는 ‘아주 몹시 또는 지긋지긋하게’의 뜻을 나타내는 부사다.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지지리 못난 사람 같으니 네가 그럴 수 있어?”,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 복도 없는지 몰라!”와 같이 ‘아주’를 강조하는 말이다. 찌질이는 표준어가 아니지만 ‘지지리’는 사전에 등재된 우리말이다. 일본어에서도 무능한 사람을 ‘’zizinasi'라고 한다.(이원희, 일본 열도의 백제어) 중앙어는 아니고 나가노 지방의 방언이다.

‘나시’가 접미사이고 ‘지지’가 ‘무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의 지지리가 일본에까지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질 + 이= 지질이 => 찌질이’로 변한 말이다. 사전에는 없지만 언중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으니 곧 사전에 등재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의미가 바람직하지 않고 서울에 사는 교양인(?)들이 즐겨 사용하지 않아서 아직 보류 중이 아닌가 한다.

 

다음으로 ‘가만히’와 ‘샛서방’의 의미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도대체 ‘가만히’와 ‘샛서방’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선 샛서방이라는 단어 먼저 보자. 샛서방이란 ‘남편이 있는 여자가 몰래 관계하는 남자’를 뜻한다. 우리 속담에 “과부집 뒤뜰에 부추가 있으면 욕먹는다.”, “첫부추는 샛서방에게만 준다.”는 말이 있다. 부추가 정력에 좋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샛서방은 ‘사잇서방’의 준말이다. 지금은 사잇서방이 비표준어가 되었다.

새서방은 신랑(新郞)이지만 샛서방은 간부(間夫), 밀부(密夫), 사부(私夫) 등으로 엄청나게 의미의 차이가 있다. 이런 샛서방을 제주도 방언으로는 ‘가만서방’이라고 한다. 그 의미는 “남편이 있는 여자가 몰래 관계하는 숨겨둔 서방”이라는 뜻이다. ‘가만’은 ‘몰래 숨겨둔’이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일본의 아키타 방언에도 ‘kama'(숨겨둔 나쁜 일)라는 말이 있다.(이원희, 일본 열도의 백제어) 우리말 ‘가만’이 일본으로 건너가 ‘부정한 일’이라는 뜻으로 굳어 현재까지 전하는 것이다. 제주도 방언에서 알 수 있듯이 ‘가만’은 ‘움직임이 없거나 아무 말 없이’, ‘어떤 일에 손을 쓰지 않거나 그냥 그대로 조용히’라는 의미가 강하다. 제주도 방언의 가만서방과 일본어의 ‘kama’ 등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만히’의 어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

샛서방이나 가만서방은 결국 ‘남들이 모르게 숨겨놓은 일’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만히’는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대로 손쓰지 말고 조용히 있는 상태를 말하고 ‘드러나지 않도록’ 조용조용히 없는 듯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은 어원을 알고 보면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가만히’의 어원이나 ‘찌질이’의 어원이 모두 일본까지 건너간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찌질이가 되지 말고 가만히(?)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가 될까?(지금은 긍정적이지만 과거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