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7.12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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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완용 수필가

     

                                                                                     

  나는 밤마다 수취인이 없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를 접어 불시착할 곳을 모른 채 날려 보낸다. 언제나 그것은 하루의 끝이라기보다는 내일을 향한 도전의 일부였다.

무엇인가 끝이라는 것, 끝이 났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일 수도 있다. 끝의 다음은 곧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끝과 시작의 사이에서 인간은 모두가 길을 잃기도 하고 삶이란 존재를 두려워한다.

  계절의 끝에는 또 다른 계절이 오기 마련이지만 새로 오는 계절은 색깔이 다르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삶의 길과도 같다. 색깔이 다른 세계, 그 희망의 곳으로 가기 위하여 인간은 욕심껏 일을 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살아가는 세상사가 흐르는 물길과 다를 바 없다. 굽이치듯 세상사에 부딪치고 흔들리다보면 한세상 저만치 돌아와 있다. 저세상 가는 길에 이룬 만큼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사 아니던가?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면 이미 열반하신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실감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신기하리만큼 어떠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할 때에는 잘 모른다. 성취욕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하며 무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섣달그믐, 또 한 해가 저문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살아온 날들을 짚어보지만 그리 즐거운 날은 거의 없다. 가난 속에 고단한 육신을 끌고 삶의 모퉁이를 미친개 마냥 달려온 아픈 기억 밖에 없다.

  내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진정한 나를 모른다. 이웃이란 수박 겉핥기식의 유대감을 형성하면 이웃으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한 이불을 덮고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이라고 별 특별한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족이란 테두리를 만들어두고 조금 더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자신과의 싸움은 살아있다는 존재만으로 지속된다. 다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달지 못할 따름이다. 설령 알 수 있다한들 운명이 정해진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되어야하기 때문에 모른 척 살아간다.

 

  하루의 종말을 알리는 밤이 깊어 간다. 멀리 가로등불빛 잦아들고,가끔 숨 가쁘게 아스팔트 도로 위를 밟고 가는 자동차바퀴 구르는 소리가 멀어진다. 드디어 조용한 하루의 끝이 시작되었다. 종일 삶과의 싸움에서 잠시 정전상태로 들어간 생명들이 숨소리 죽이며 어둠 속에 눈을 붙이고 있다. 평온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걷히면 그들은 다시 밤사이 안부도 묻기 전에 할퀴고 물어뜯으며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낼 것이다. 차라리 휴전의 상태인 하루의 끝인 어둠의 밤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이름 알 수 없는 밤새가 운다. 낮에 울 수 없어 밤에 울어야 하는 그 새는 어둠이 좋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목청을 높여 슬프고 외롭게 울면서 자아를 일깨운다. 그들은 어둠 속인지라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니 참으로 홀가분할 것이다. 부끄럽게 인간은 욕망의 끝을 향하여 밤에도 싸운다. 새처럼 외롭게 울 수도 없는 밤을 그들은 아예 잃어버렸다. 삶의 끝을 잃어버렸다. 인간들에게는 오로지 시작만 있을 뿐이다. 시작이 곧 끝임을 터득한 사회, 그 안에 인간이 존재한다. 인간이 어둠 속에 잦아드는 불빛만큼이라도 삶의 이유를 알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살아가는 길, 문득 그 길 사라지면 죽음이다. 끝이라는 것은 그 후에 일어나는 현상일 수밖에 없다.

 

창가에 여린 햇살 한 줌 앉았다 가는 겨울의 끝자락 아침, 빌딩숲에 갇힌 사람들은 하루의 날개를 편다. 더러는 희망일 수도 있지만, 하루를 견디어 가기 위한 위선의 날개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무작정 날아간다. 희망도 목적도 없는 곳을 향하여 관제탑의 불빛도 없는 활주로를 위태롭게 이륙하는 것이다. 불시착할 그들의 현주소를 몰라도 하루의 종말을 위하여 사람들은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그들에게 아침은 새로운 시작의 일부이다. 하루의 시작은 희망일 뿐인데 시간의 존재는 희망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생존경쟁의 터전에서 종일 힘든 삶을 위해서 싸우고, 절망하다 끝나지 않은 내일을 안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게 내일 또 내일을 외쳐보지만 아득한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늙은이의 얼굴에 비늘처럼 돋아나는 검버섯을 보면서 삶의 끝을 예고하듯 절망할 필요는 없다.

 

끝의 다음에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있지 않은가? 나는 매일 밤이면 수취인 없는 편지를 날린다. 불시착할 현주소를 몰라도 좋다. 다만 내일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