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모밀, 메밀소바
메밀, 모밀, 메밀소바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7.2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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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오늘은 먼저 지난 주 숙제 풀고 가야겠다. 10,000에 해당하는 순한글은 ‘골’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즐겨 쓰시던 용어 중 하나가 ‘골백번’이다. 골백번은 ‘10,000 × 100 = 백만’번이다. 연세 드신 분들은 골백번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지만 그 의미가 백 만 번인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무지하게 많은 것을 말할 때 쓰는 용어로 알고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벽(壁)의 순우리말은 ‘바람’이다. 역시 시골에 가면 ‘벼람박(바람벽(壁)’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필자의 조부께서 많이 사용하시던 용어다. 아이들이 장난이 심할 때 “저 놈의 새끼들 ‘벼람빡’에 쳐 바른다.” 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바람 벽(壁)’을 한 번에 말하면 그렇게 들린다. 우리가 잘 아는 노래 중에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벽엔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라는 가사를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순우리말 이야기를 하자면 한자보다 더 어렵다.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고, 그들은 그것이 표준어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메밀국수’인지, ‘모밀국수’인지 ‘메밀소바’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이다. 경북의 일부(영일)지방과 함경도에서는 거의 ‘모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표준어이다. 어떤 책에는 ‘모가 난 밀(角麥)’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유추하기도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원래부터 메밀이 맞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말에서 ‘뫼 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말에는 ‘메’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예컨대 ‘메아리(울려 퍼져 가던 소리가 산이나 절벽 같은 데에 부딪쳐 되울려 오는 소리)’, ‘멧돼지(맷돼짓과의 포유류, 산돼지)’, ‘메나리(산유화)’ 등에서 그 어원을 볼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모밀>뫼밀>메밀’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 반대로 본다. 물론 과거에는 ‘뫼 산(山)’이라고 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많은 단어들을 근거로 보면 ‘메’가 더 많다.그러므로 ‘메밀>뫼밀>모밀’의 과정으로 변형되었거나 처음부터 ‘메와 모’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던 것으로 본다. 지역에 따라서 각기 방언으로 말하던 것을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요즘 흔히 ‘단모음화 현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사람들은 복모음을 발음하기보다는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이중모음을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의 ‘news’도 과거에는 ‘뉴스’라고 했지만 지금 미국의 젊은이들은 ‘누스’라고 발음하는 사람도 많다. 이와 같이 어려운 발음에서 쉬운 발음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메밀을 발음하기 불편한 일부 지방에서 ‘모밀’이라고 한 것이 지금 국숫집(북한어로는 국수집)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숫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메밀소바’라는 단어다. 일반적으로 메밀소바라고 하면 일본식 메밀국수를 말한다. 소반에 메밀국수를 놓고 간장과 무, 겨자 등을 섞어서 많든 육수에 조금 씩 말아 먹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메밀소바라고 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그냥 일본식 메밀국수라고 하는 편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소바(soba)'라는 말이 일본어로 ‘메밀’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밀소바’라고 하면 ‘메밀메밀’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말에는 한자어와 한글이 병기된 것도 많지만 그것을 바람직하게 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처갓집(가(家) = 집), 역전앞(전(前) =앞), 초가집(가(家) =집)의 표현과 같아서 처가, 역전, 초가 등으로 부르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메밀소바도 ‘일본식 메밀국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해마다 봉평에서는 이효석의 대표작 <모밀꽃 필 무렵>에서 본 따 ‘메밀꽃 축제’를 연다. 1936년 당시에는 원제목을 ‘모밀’이라고 한 것이고, 현재는 맞춤법 규정에 맞춰 ‘메밀’이라고 한 것이다. 들판에 하얗게 핀 메밀꽃이 소담스럽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다. 메밀은 주로 나지막한 구릉에 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에서 많이 키웠으니 메밀이라고 한 것이 당연하다. 메밀이나 모밀이나 식당에서는 특징을 살려 개성있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먹는 우리들은 정확한 뜻을 알고 먹으면 더 맛있을 것이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로 발전시키는 것도 발전의 한 방법이다. 우리도 재미난 이야기 하나 만들어 마을 축제로 승화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