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노근리 평화공원을 아시나요
6.25의 아픈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거창 양민학살사건과 제주4.3평화공원/그리고 노근리 평화공원
6.25전쟁의 아픈기억들
노근리평화공원 정구도 이사장의 집념과 노력으로
연구논문 발표
[ 日本의 명문 리츠메이칸대학이 발간하는 학술연구저널 '평화연구'에 권두특집(券頭特集) 논문으로 실리다 ]
어제 일본 유명대학인 리츠메이칸 대학교(立命館大學校)측에서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학술연구 논문집 '평화연구' 제 20호를 받았다. 작년 연말에 기고했던 노근리 사건에 관한 나의 연구논문이 이 학술지의 권두특집 논문으로 실린 것이다.
나의 논문의 제목은 조금 길지만 '한국전쟁중 발생한 노근리학살사건의 역사적 진실규명 과 인권과 평화회복 활동들의 의미와 과정' 이란 제목이다. 이 논문은 노근리사건이 인권신장과 평화증진 차원에서 지니고 있는 의미와 시대별 진상규명의 진전 상황과 성과들을 정리한 논문인데 리츠메이칸대 측에서 연구논문집 권두특집으로 실어주어서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
리츠메이칸 대학교는 세계 최초로 대학내에 평화박물관을 만든 대학이고, 평화에 관한 연구를 매우 열심히 하는 대학으로 국제적 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노근리피해자대책위원회를 처음 만드셨던 나의 선친은 서슬이 퍼렀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7년도에 노근리사건을 다룬 '버림받은 사람들'이란 제목의 중편소설을 발표하셨고, 1994년에는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라는 장편실화소설을 출간하신 바 있다. 사실 이 소설이 있었기에 세상에 노근리사건이 비로서 알려질 수 있었다.
1991년 봄부터 부친의 장편소설 집필작업을 2년반 동안 도와드렸던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노근리사건과 한국전쟁 등 한국의 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994년부터 나는 부친과 함께 노근리사건의 진상규명운동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4년 6월에 설립된 노근리사건 피해자 대책위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미 상하원 의장에게 수차례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그러나 답변조차 주지않았다. 그러다가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NCCK)와 미국기독교 교회협의회 (NCC-USA)의 도움으로 미 국방부의 첫번째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답변 내용이 너무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노근리사건 현장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았다"는 거짓말 답변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노근리 사건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었다. 맨먼저 1998년도에는 노근리 사건이 한ㆍ미 양국의 현대사(現代史)에 실존(實存)하는 사건임을 증명하는 역사학 논문을 한국의 학계에 발표했고, 이어서 미국 정부의 법적책임 여부를 다룬 국제법 논문도 발표했었다. 이후에는 노근리 평화공원의 성공적인 조성을 위한 기본방향에 관한 연구 논문을 쓰는 등 총1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렇게 발표된 나의 논문들을 모아서 2007 년도에 '한국전쟁기 인권침해 및 역사 인식의 문제'(도서출판 두남)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과거사를 부정적으로 보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8년도에 문화체육 관광부에서 사회과학분야 우수 도서로 당당히 선정되는 영예를 얻기도 했었다.
나는 이외에도 나는 노근리사건의 역사와 인권에 관한 단행본을 7권 정도 더 출간하 기도 했다. 이러한 연구와 지식의 축적은 2014년 도에 노근리평화공원에서 전세계 35 개국이 참가해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바 있는 제8차 INMP 국제평화 컨퍼런스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일본 유명 대학에 노근리 사례에 대한 학술연구논문이 정식으로 소개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자 노근리사건 발생 70주년인 내년 2020년에는 노근리평화 공원에서 전 세계 50여개국이 참가하는 평화학술행사인 '노근리 글로벌 평화포럼'이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 날들을 회고해보면 선친께서는 노근리 사건의 진실규명을 문학적 방법으로 접근 하셨고, 나는 학술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한ㆍ미 양국사이에 노근리 사건을 두고 1960년부터 40년동안 벌어진 역사전쟁에서 세계 최강국인 미국 클린턴 대통령에게서 2001년 1월, 유감표명을 받아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노근리피해자와 한국 국민에게 이례적으로, 그러니까 전 세계에 유사사건들이 많지만 유일하게 유감성명서를 발표했다.
더 나아가 노근리 사건이 인권과 평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글의 힘이었고, 분명 지식의 힘이었다고 평가해도 결코 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달리 말한다면 노근리 사례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