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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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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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종국

 

 중국대륙의 남서부 내륙에 깊숙이 위치한 쓰촨성(四川省)은 황허강 유역인 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독특한 쓰촨문명을 이루었으며 크게 촨시고원과 쓰촨분지로 나누어지는데 성(省)의 면적이 우리나라 남한면적의 5배나 된다. 서쪽으로는 칭하이성과 티베트자치구, 북쪽은 간쑤성과 섬서성, 남쪽과 동쪽은 윈난성, 구이저우성, 충칭직할시가 인접하였다. 성도(成都)는 쓰촨성의 성도(省都)이고 중국어로 청두라고 한다. 3세기에 유비가 세운 촉한의 수도로 당시에는 익주라고 하였다.
  삼국지를 보면 아무래도 조조–손권-유비가 세운 삼국의 끊임없는 다툼이다. 그냥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머리를 짜고 짜낸 기막힌 전술로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쉽게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전투이다. 그래서 장수도 중요하지만 신비감을 몰고 다니는 병법에 능한 천재적인 두뇌의 제갈량 같은 인재가 필요하고 듬뿍 인기를 누리게 된다. 따라서 몇 년을 두고라도 삼초고려 하여 백년지계를 튼튼하게 할 병법에 뛰어난 인재를 얻을 수만 있으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라도 얻은 심정일 것이다. 


  수많은 전투 중에 관도대전-적벽대전–이릉대전을 3대 대전으로 손꼽는다. 조조는 헌제를 옹립하며 막강한 권력을 쥐고『관도대전』에서 손권의 원소와 일전일퇴의 사투 끝에 대승하여 천하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에 유비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이고, 손권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군대와『적벽대전』에서 승자가 된다. 그러나 유비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손권과 크게 대립하다가『이릉대전』에서 대패하면서 제갈량이 내세운 천하삼분지계는 완전히 틀어진다.
  한편,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서 황제로 등극하자, 이를 찬탈이라 여긴 유비와 손권은 각자 나라를 건국하여 천하는 삼국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유비는 촉을 건국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하면서 군사인 제갈량한테 한을 부흥시켜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지를 이어 받은 제갈량이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군사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제갈량마저 전쟁 수행 도중에 병사하면서 사마의가『고평릉 사변』을 통하여 위의 권력을 장악하였다.


  마침내 사마 씨 일족은 권력을 바탕으로 263년에 사마소가 촉한을 멸망시키고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은 265년에 위나라 황제를 압박해 선양을 받아 진(晉)나라를 건국하였다. 280년에 오나라마저 멸망시킴으로써 삼국시대가 끝났다. 야망에 불타 삼국시대를 연 조조-손권-유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결국은 엉뚱하게 조조 일가에게 수모와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실속을 챙긴 사마의가 승승장구하고 그 자손이 삼국을 통일하여 최후의 승자가 되었으니 천하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이처럼 후한 말 동탁이 정권을 찬탈하자 각지의 군웅세력은 한나라 황실의 회복을 대의명분으로 삼아 할거하면서 조조의 위, 손권의 오, 유비의 촉이 대립하는 삼국시대가 열려 60여 년간 이어졌다. 하지만 천하통일을 위한 별들의 전쟁에서 최대 수혜자는 조조도, 유비도, 손권도 아닌 사마의였다. 위나라의 조조, 조비, 조예, 조방 4대를 보필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립했고,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삼국을 통일하여 진(晉)왕조를 수립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진정한 최후 승리자다.

 

무후사의 제갈량 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