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이사람] 참금융인,류병교 은행장
[바로이사람] 참금융인,류병교 은행장
  • 도움뉴스
  • 승인 2019.03.23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후천성 소아마비 장애를 이겨낸 금융인, 류병교 은행장
사진 류병교 은행장
사진 류병교 은행장

 

삶이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출세는 했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경우를 자주 본다.

쉽게 말해 출세한 정치인은 있어도 성공한 정치인은 별로 없다. 반면에 출세는 하지 못했어도 성공을 일군 사람들을 만난다. 그래서 ‘출세가 곧 성공이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적 성공’과 ‘사회적 출세’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성공은 개인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 성취 정도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의 언어를 자주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려운 조건이나 환경에 처해도 열정을 쏟아 부어 성공을 일궈 주위에 감동과 아름다운 향기를 선사한다. 그러나 출세한 사람들은 긍정의 언어보다 부정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상처를 주는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쟁취해 겉으로는 박수를 받지만 속으로는 욕받이가 된다.

사람은 다양한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공동체를 비롯해 생계를 위한 일터공동체, 모임이나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동호회, 거주나 일터가 있는 지역공동체, 나아가 태어나면서 주어진 민족(국가)공동체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속된 공동체 중 한 곳에서 만이라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성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선천적 장애와 항암치료를 받으며 성공하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가족과 일터, 동호회, 지역사회에서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성공의 주인공을 ‘피플 파워’에서 만났다.

금융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류병교 저축은행장이다.

만나자마자 들려온 첫 마디는 “20일 대구로 갑니다”이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경북에 소재한 저축은행장으로 위촉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류병교씨는 올해 64살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류병교씨는 줄곧 제2금융권인 상호신용금고와 저축은행에서 근무해왔다. 이천에서 임원으로 일하다 2002년 초 안산상호신용금고(현 Pepper 저축은행) 상무이사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안산과 인연을 맺게 됐다.

 

사진 음악 재능봉사하는 모습
사진 음악 재능봉사하는 모습

 

3년여를 근무하다 2005년에 서울 강남에 있는 푸른저축은행 상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급성 간염이 재발해 3년간 휴직을 했다가 2012년 안산에 있는 Pepper 저축은행 부사장으로 복직했다. 그러다가 2014년 세람저축은행 대표이사 겸 저축은행장이 되어 2017년 퇴임했다.

퇴임 후 2년을 부인이 하는 제과점에서 틈틈이 일을 돕다가 오는 20일 경상북도에 있는 저축은행장으로 위촉돼 다시 금융인으로 복직하는 것이다.

그는 금융인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절 만찬에 초대되어 청와대를 다녀온 바 있다. 1999년 6월이다.

금융감독원이 45만 금융인 중 신지식인 6명을 선정했는데 제2금융권에서는 유일하게 그가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저축은행들이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선진화된 일본 은행들의 경영방법인 지리정보시스템을 도입해 금융정보화에 앞장서 지역밀착 금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뉴질랜드 총리 부부가 함께 참석한 만찬이었습니다. 제 능력 보다 큰 명예였죠.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고 나니 금융인으로서의 몸가짐과 자세를 바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겸손해 한다. 두 달 뒤인 99년 8월 경기도 신지식인상도 수상했다.

 

 

2002년 1월 안산으로 직장을 옮긴 그는 호수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안산에 대기오염과 악취 문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던 시절이었다.

특히 날씨가 흐린 날이면 악취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악취로 고생하던 그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는 당연한 소망을 꿈꾸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악취 때문에 운동장에서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교사가 시샵으로 활동하던 ‘안산 악취 끝’ 다음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해 악취근절 활동을 시작했다.

류병교은행장을 참금융인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후천성 장애를 극복하고 모든 역경을 이겨내면서 이자리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비로 가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부인의 내조와 가족의 지원아래,각종 지역사회에 재능기부와 나눔을 몸소실천한 산증인이다.

안산지역에서 지역사회 봉사활동과 장애인단체상근부회장을 맡으며 그들의 권익대변에 앞장서왔던 류행장이 또 다른 부름을 받았다.

류병교 저축은행장은 일터와 취미, 가정, 지역공동체에서 모두 성공한 인생이다.

금융인 부문에서 신지식인 상을 수상하고 지역의 현안이었던 악취해결에 앞장서고 취미생활인 탁구와 음악까지 즐기며 품위 있는 노후의 삶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부인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자녀들로 키워 낸 류병교 저축은행장은 스승의 은혜와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겪은 소아마비와 항암치료가 자칫 절망과 비뚤어진 인생으로 빠지지 않고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성공 스토리를 이룬 것이어서 더욱 큰 감동을 준다.

어디에서든 어느 자리에서든 빈자리가 허전해보이는 류병교 은행장의 앞날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 사모님과 함께
사진 부인과 함께 여행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