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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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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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 주전부리의 대명사 ‘아폴로’. 얄팍한 비닐 포장을 뚫고 퍼지는 향,
혀 끝에 퍼지는 단맛은 그 시절의 추억을 통째로 소환한다.

여행의 잔상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음식과 엮는 것도 좋은 방법.
가령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으로는 단연 카야잼이 꼽힐 것이다.


1년 내내 여름, 싱가포르로 떠나다
한껏 어깨를 움츠리고 출근하는 매일에 지쳐갈 무렵, 따뜻한 나라를 갈망하며 떠난 곳, 싱가포르. 비행기 안에서 5시간을 보내고 땅을 밟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여기가 소원하던 그 곳’이라며 격한 환영인사를 건넨다. 한껏 들뜬 기분으로 싱가포르의 필수 여행 코스인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도심 한가운데서 녹음을 뿜어내는 보타닉가든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 후 싱가포르를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려 찾아간 곳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차이나타운인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이다.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1 -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보이는 싱가로프의 아름다운 야경
사실 ‘싱가포르’와 ‘차이나타운’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LA의 한인타운이 그러하듯이 특정 국가에 이주한 소수의 민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에 ‘타운’이 붙기 마련인데, 싱가포르의 여러 민족 중 중국인의 비율은 70%가 훌쩍 넘기 때문. 중국인이 민족 구성1위를 차지하는 싱가포르에 ‘차이나타운’이라니, 다소 어색한 구석이 있지만 아기자기한 소품과 중국문화를 만끽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어 인기 여행 코스 중 하나다. 또 하나, 싱가포르 여행객이 차이나타운을 필수 코스로 꼽는 이유가 있으니 야쿤 카야 토스트 본점이 바로 그것이다.

설렘만 주고 떠난 그 녀석, 야쿤 카야 토스트
‘야쿤(Yakun)’ 혹은 ‘카야(Kaya) 토스트’라는 이름은 국내 인지도가 꽤 높은 편. 수년 전 전국 각지에 ‘야쿤 카야 토스트’라는 이름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겼던 덕분이다. 카페라고 하지만, 이 집에서 커피보다 인기 있던 메뉴는 바삭하게 구운 빵 사이에 카야잼을 발라낸 ‘카야 토스트’였다. 싱가포르의 아침을 책임지는 달콤 짭짤한 토스트가 국내에서도 제대로 취향을 저격한 것.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2 -깨끗한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365일, 특히 여름이면 긴 주문 대기줄을 늘어트리며 중독성 강한 토스트를 팔던 이 프랜차이즈는 어느 해 갑자기 대부분의 점포를 철수하는 바람에 이미 카야잼 바른 토스트의 매력에 중독된 국내 팬의 아쉬움을 한껏 샀다. 한동안 포털사이트에는 서울에 남은 매장이 있는지 묻고 답하는 글이 만연했을 정도. 그런데 마침,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 그 반가운 카페의 1호점이 있다고 하니 카야잼의 마력에 빠져본 자로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야쿤 카야 토스트가 있는 차이나타운은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싱가포르의 지하철인 MRT를 타고 차이나타운역에 내리는 것이 끝. 여느 시장 골목이 그러하듯 한발 옮길 때마다 주전부리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하다. 이런저런 유혹에 기분 좋게 항복하며 양손이 무거워질 무렵 인파가 줄고, 한적한 골목 사이로 ‘Yakun’의 간판이 보인다.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3 - 싱가포르 사람들과 어울려 카야 토스트를 먹을 수 있는 동아이팅하우스 예전 건물, 지금은 골목 안쪽으로 이사했다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4 - 싱가포르 유니버셜 스튜디오

카야 토스트, 영국과 하이난의 합작품
카야 토스트와 뗄 수 없는 환상의 조합이 있으니 수란 그리고 코피(Kopi)다. 이 셋이 테이블에 차려지면 싱가포르의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되는 셈. 수란은 조미를 해 먹을 수 있도록 얕고 넓은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입맛대로 간장, 후추를 살짝 뿌려 간을 맞춘 후 달콤한 카야 토스트를 수란 노른자에 콕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
그 후 연유로 부드러움을 더한 싱가포르 특유의 커피인 ‘코피’를 한 입 머금으면 완벽한 싱가포르의 아침을 느낄 수 있다. 빵과 계란 그리고 커피까지. 그 구성에서 영국 브런치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이 메뉴의 탄생이 19세기 영국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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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 싱가포르에서 즐기는 전통 용춤
맨 처음 카야 토스트가 만들어진 곳은 배 위다. 당시 영국은 싱가포르를 무역 항구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긴 항해에 필요한 식사는 주로 하이난 사람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영국 선원의 입맛을 맞추려 고안한 메뉴가 바로 카야 토스트다.
빵은 세계 어디든 비슷하니 핵심이 된 것은 카야잼인데, 달걀에 코코넛 밀크 그리고 판단잎을 넣어 졸인 것이 성공적이었다고. 카야잼의 맛을 좌우하는 ‘판단잎’은 이 지역에서 나는 향신료로 자스민, 바닐라 향이 동시에 나는 것이 특징이다. 달걀과 코코넛 밀크로 고소함과 달콤함을 판단잎으로 짙은 풍미를 더한 덕분에 하이난 사람들은 특별한 재료 없이 빵에 카야잼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선원의 입맛을 수월하게 맞출 수 있었다. 육지와 달리 조리 환경이 좋지 않은 배 위, 복잡한 조리과정 없이 즐기는 만족스러운 식사는 더 없이 귀한 것이었을 터. 카야잼의 인기는 육지까지 퍼졌는데, 영국 선박이 늘 오고 가던 싱가포르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카야잼은 싱가포르의 뜨거운 하루를 깨우는 아침 메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카야잼 3대천왕, ‘야쿤, 동아 이팅 하우스, 토스트 박스’
야쿤 카야잼은 국내에 프랜차이즈를 냈던 야쿤(Yakun)이라는 브랜드의 비법이 담긴 잼이다. 야쿤 매장에서 판매하니, 메뉴를 주문해서 먹어본 후 ‘이 잼의 맛이 내 입맛에 딱!’이라는 신호가 온다면 그곳에서 잼을 사면 된다. 야쿤의 카야잼은 기본에 충실한 데다 이미 우리나라 야쿤 토스트 팬의 입맛에 학습된 덕에 불호가 드물다고 하지만, 혹 달걀 맛이 좀 과하거나 비리게 느껴진다면 차선책이 있다. ‘동아 이팅 하우스’를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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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 차이나타운에 자리한 야쿤 카야 토스트 본점
1939년 개업 후 3대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동아 이팅 하우스의 카야 토스트는 야쿤보다 달걀 향이 덜하고 담백하다. 덕분에 매일 빈속에 첫 끼니를 해결하는 현지인들이 유독 많이 찾는다고. 점심 때에는 볶음밥, 잡곡밥을 맛있게 먹더라도 아침 빈속에는 역시 흰 쌀밥이 먹고 싶은 것과 비슷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동아 이팅하우스 역시 브랜드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잼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혹여 이곳에서 조차 달걀이나 향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마지막 선택지는 ‘토스트 박스’.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7 - 대형 쇼핑몰마다 찾아볼 수 있는 토스트 박스


싱가포르의 아침을 기억하는 방법, 카야잼

08 - 야쿤 카야 토스트 본점의 버터카야 토스트 세트
09 - 카야 토스트의 핵심이 되는 카야잼

싱가포르 대형 쇼핑몰에는 어김없이 토스트 박스 체인점이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 역마다 스타벅스가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 누구라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해서 비린 맛은 찾아 볼 수 없으며 향신료도 최소화했다. 정통 카야 토스트의 느낌은 덜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나 평균화된 맛을 보장한다는 프랜차이즈의 미덕도 갖춘 것이 장점. 이곳 역시 매장에서 토스트 박스 고유의 카야잼을 판매하고 있다.
3대 카야 토스트 매장의 카야잼 중 야쿤, 토스트박스의 카야잼은 인터넷 해외 쇼핑으로 주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에 갔다면 카야잼만큼은 꼭 사오라는 글이 넘쳐나는 건 유통기한 때문. 재료에 달걀 비중이 높은 탓에 유통 기한은 고작 6개월 남짓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묵직하게 캐리어를 채운 카야잼과 함께라면 언제든 싱가포르의 그리운 아침은 혀끝부터 되살아날 테다.

Words 김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