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죽이기는 결국 대한민국 교육 죽이기
자사고 죽이기는 결국 대한민국 교육 죽이기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6.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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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희봉 문학평론가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처음 생겼다. 고교 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지 30년이 다 된 때였다. 평준화 교육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고교 교육을 다양화·특성화하자는 요구가 높았다. 당시 이상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고교 평준화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하고 특수목적고·특성화고 등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되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육하게 하는 학교였다. 전북 상산고를 비롯해 부산 해운대고, 울산 현대청운고, 강원 민족사관고, 경북 포항제철고, 전남 광양제철고가 첫 자사고가 됐다. 정부가 나서 고교 평준화로 획일화된 교육 현장에 숨통을 터 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대폭 확대했다. 2010년 자사고 26개교가 지정됐고, 이듬해 51곳으로 늘었다. 그런데 선거로 뽑힌 좌파 교육감들이 늘어나면서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된다는 이유에서다.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 때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으로 걸었다. 이를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자사고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전주 상산고 홍성대 이사장 인터뷰를 보니 가슴이 울컥해진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울해진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정부는 사학을 마치 호주머니 속 물건 취급하고 있어요. 자기 멋대로 이렇게 옮겼다 저렇게 옮겼다…. 사재 털어 학교 운영하면, 최소한 권한을 줘야 하잖아요? 지금 정부는 돈 잔뜩 투자하라고 해서 해놨더니 이제 필요 없다면서 빠지라고 하는 거예요. 이걸 누가 수용합니까?" '수학의 정석' 저자이자 전주 상산고 설립자인 홍성대 이사장은 6월 20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전북교육청은 "상산고가 운영평가에서 기준점 80점에 미달하는 79.61점을 얻어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했다. 향후 교육부가 동의하면 상산고는 17년 만에 일반고로 전환된다. 홍 이사장은 교육청 발표에 대해 "기가 찰 노릇이지만 현 정부가 꾸준히 (자사고 폐지를) 추진해왔기 때문에 놀랍거나 당황스럽진 않다."면서 "앞으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절차에 임하겠다."고 했다. 만약 교육부까지 교육청의 지정 취소 결정에 동의하면 사법부에 소송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부만은 법적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했다.

  홍 이사장은 타 시도의 자사고 재지정 기준점은 70점인데,전북만 80점으로 높여 탈락하게 된 것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는 "만약 사법부마저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선 애들 교육 못 한다."고 했다. 홍 이사장이 지금 가장 걱정하는 것은 상산고 재학생들이 동요해 공부에 지장 받을까 하는 것이다. 이날도 그는 아침에 학교로 나가 학생들을 다독였다. 홍성대 이사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학교 일은 어른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 너희들은 오로지 공부만 해라.'고 당부해왔는데, 아이들이 지난달엔 '학교가 험한 꼴 당하는 걸 보고서 가만있을 수 없다.'며 대통령에게 손 편지 396통을 써서 보냈다."면서 "그것까지 말릴 순 없더라."고 했다.

  지난 17년간 그는 학교에 전입금으로 463억 원을 투자해 왔다. 한 해 20억~30억 원씩이다. 스테디셀러가 된 '수학의 정석' 판매 이익 상당 부분을 학교에 투자한 것이다. 홍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계속 좋은 교육 시키려면 여태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큰돈을 내야 하는데, 지금 내 꼴은 이 돈을 제발 계속 쓰게 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심지어 재판까지 하는 지경"이라면서 "좋은 학생 길러내면 그 혜택을 내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 이사장은 현 정부와 좌파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 정책을 추진하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사학의 존재 의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을 집행하고 있어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사학은 설립자가 건학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세운 학교로, 학생 선발권, 교육과정 운영권 등 권한을 가져야 하는데도 정부가 '평준화' '평등교육'을 이유로 모든 권한을 학교 설립자에게서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홍 이사장은 "설립할 때 땅 한 평, 벽돌 한 장 안 사줘 놓고 이제 와서 '학교 지었으면 물러나라. 이제 우리가 운영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게 지금 정부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정부의 교육 정책이 계속되면 학교뿐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이라고 했다. "과학, 외교, 경제 모든 분야에서 인재가 없어 쩔쩔매는 우리나라인데, 모든 교육을 획일화, 평준화하면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할 일은 사립학교가 건학 이념 따라 다양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라 경쟁력도 높아질 겁니다. 선진국들 다 그렇게 하잖아요. 일부 부정·비리 사학은 법대로 강하게 처벌하면 되니, 제발 잘하는 사학들까지 누명 씌워 다 똑같은 학교로 만들지 말아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들이다.

  그동안 좌파 교육감들과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는 고등학교를 서열화하고 일반고를 황폐화시킨다."며 폐지를 추진해왔는데, 그 첫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전북·경기교육청의 두 자사고에 대한 지정 취소에 교육부가 동의할 경우, 두 학교는 일반고로 전환된다.

  하지만 이날 상산고와 안산동산고 지정 취소가 발표되자마자 "좌파 교육감들이 한국 교육의 미래가 아니라 표를 의식해 멀쩡한 학교를 없애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평등·공정을 외치는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위해 불공정한 짜맞추기식 평가를 했다."는 지적이 터져 나온 것이다.

  국가의 교육정책을 이념 성향이나 여론에 따라 밀어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부는 미래 교육 환경에 대비해 일반 교육과 다양한 수월성 교육이 조화되는 시스템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그런 고민을 전혀 안 하고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 어이없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김승환 전북교육감이다. 전국 좌파 교육감 가운데 '자사고 죽이기' 선두 주자이다. 2010년에도 익산 남성고에 대해 자사고 자격을 박탈했다가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로 무산됐다. 상산고는 이번 평가에서 학생·학부모·교원 만족도 항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았다. 그런데 김 교육감은 원래 60점이던 커트라인을 80점으로 올렸다. 원래 없던 항목을 갑자기 만들어 점수를 깎는 황당한 일도 저질렀다. 교육 행정이 아니라 폭력배 주먹질을 보는 것 같다.

  김 교육감은 작년 11월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측근을 승진시키기 위해 인사 담당자에게 그의 근무평가 점수와 순위를 올리도록 지시한 사실이 법원 판결로 드러났다. 공적인 행정과 절차는 안중에도 없고 '내 맘대로 한다.'는 것 같다.

  좌파 내에서도 그는 '불통' '독불장군'으로 불린다. 가장 유명한 것이 2015년 "삼성그룹에 전북 지역 학생을 취직시키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다. 지역민들이 '우리 자식들 앞길 막는다.'고 반발했다. 2013년 비정규직 교사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자 '(해주면) 노조 가입해 투쟁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 전교조를 그토록 옹호하면서도 이런 말을 해 "이 사람 진보 맞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필자는 도내 한두 곳 정도의 영재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자원부족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우수두뇌다. 우수두뇌 소수가 대한민국 국민을 먹여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수학생들을 주저앉혀 평균학생으로 만드는 절름발이 교육을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 곳도 엇다. 경제평준화에 이어 교육평준화가 가져올 폐해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사진 김용복 극작가
사진 김용복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