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으로 일본의 벽을 넘자.
이성으로 일본의 벽을 넘자.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8.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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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홍기 좋은감리교회 원로목사

   

사진 이홍기 좋은감리교회 원로목사
사진 이홍기 좋은감리교회 원로목사

                                                      

 돌아가는 정세가 심상찮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영공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우리를 위협하고, 일본은 드디어 화이트 리스트(안보우호국)에서 한국을 제외 시켰고, 이 일로 인해 우리 민족 감정의 뇌관을 건드렸다. 따라서 우리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일본 여행을 취소하며, 아베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게 되였다.

  민족이 같은 공동운명체로서 공격을 당할 때 대응하지 않는다면 민족의 정체성과 연대감은 유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민이 있다. 이러한 감정적인 일들은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성보다 감정으로 처리한 일들은 그 결과가 초라했다 그러므로 국민은 감정적인 행동을 한다하더라도 정부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정부가 감정적이면 고통은 국민이 당한다.

 

일본은 진작부터 주도면밀하게 무역 공격을 준비해 왔다.

 박근혜 정부 때 체결한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현 정부가 뒤집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 때 이뤄진 포괄적인 한일협정을 무시하고, 강제 징용자에 대한 개인보상 판결을 내리자, 정부간 합의를 파기하는 한국을 믿을 수 없으며, 더 이상 우방국으로 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간 우리정부는 과거의 반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대통령은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킨 이순신장군의 결의를 호소하고, 민정수석은 반외세를 주장했던 동학농민운동의 죽창가를 외쳤다. 국민 모두가 일심단결하여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하자는 멧세지이지만 이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술수에 불과한 것이며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더욱이 정부의 대일정책과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친일파로 몰아세우고 ,반일감정을 자극하지 말고 합리적 해법을 찾자고 하면 매국노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편 가르기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간이다. 8월28일이면 일본이 지정한 27개의 백색국가 중에서 한국이 제외된다. 정부는 어떤 비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말에 의하면 국내기술을 개발하는데 5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미국이 중재안을 내 놓았다고 한다, 내용인즉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 남는 대신 징용 배상과 관련한 국내 일본기업에 대한 자산매각을 멈추라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굴욕이요 구걸외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때론 무릎을 꿇어야 할 때도 있다.

  고사성어에 타면자건(唾面自乾)이란 말이 있다.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세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공격해오는 적을 멈추게 하려면 명분을 던져 주어야 한다. 미국이 제안한 안건을 테이불에 올려놓고 협상한다면 일본도 거절할 명분이 없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대화의 장을 만들어서 시간을 벌어 발등의 불부터 끄고 봐야한다.

 

  이번사태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기업구조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알았고, 일본에 너무 의존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교훈을 자산으로 삼아 국력을 키워 나아가야 한다. 포스트 세계화 시대에 올바른 방향을 잡고 국력을 강화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반일운동으로 수입이 다변화 되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향상 되는 것도 아니다.

민족의 감정과 울분은 국민에게 맡기고 정부는 이성을 가지고 모든 정책을 국익의 관점에서 재검토 해 나아가야 한다.

이성을 잃으면 재앙이 따른다는 것을 문재인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