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찾아 정답을 찾아
사랑 찾아 정답을 찾아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8.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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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金鎔泰(대전광역시노인복지관 자원봉사자)
사진 김용태 자원봉사자
사진 김용태 자원봉사자

 

강산이 8번이나 변하려고 한다. 참으로 오랜 세월 아닌가 한다. 그런데도 아주 짧게 느껴지는 건 착각 아니면 아쉬움일거라 여긴다. 무엇을 했나. 바른 길을 걸어왔나. 나로 인한 세상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반추해 본다.

중학교 시절 안 마당을 쓸고 있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장차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갑작스런 질문에“ ” 대답을 못했다. ‘장군이 되고 싶어요.’라고 뇌리 속에 박힌 표현을 하지 못했다. 훈장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활동범위가 좁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다음 말씀은 훈장이 되라는 것이었다. 화초를 기르는 것도 중요한데 인간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크겠느냐는 설명도 하셨다. 그로부터 10수년 뒤에 교단에 서있게 될 줄을 전혀 예측 못했던 것이다.

교육자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개성 파악이 아니었나 싶다. 이름을 암기하고 모범생과 말썽장이를 구별하되 미워하지 않고 출석위주로 지도 했다. 자기의 적성에 맞는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낙오자가 되지 말라고 채근도 했다. 자라는 과정에 이탈하려 하거나 미숙한 점을 양몰이처럼 끌고 가는 양치기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관이었을 것이다. 내가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고 했지 학생들 각자의 입장에서 인생관을 심어 주지 못하였다. 학생들 위주로 상담을 많이 해주었어야 했다. 다시 교단에 선다면 개성에 맞는 진로 지도를 할 것이다.

가정에서 자상한 남편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은 나의 커다란 허점이었다.

능력이 못 미쳤고 성의가 없었다. 위로 두 아들은 그래도 가르치는 척이라도 하다가 지쳐서 막내는 덤으로 키운 것 같다. 그래도 말썽 없이 자라 사회인이 되어준 것에 감사한다. 욕심으로는 아버지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주길 바랬다. 둘째가 외국유학길에 올라 성공해서 돌아와 교수가 된 그때가 내 인생에 절정이었다. 다른 두 아들도 아버지만큼은 성공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산다는 것은 사랑 찾아 정답을 찾아 고민하고 조금씩 얻어지는 지식과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한다. 직업을 가져야 하고, 살집을 장만하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보금자리를 형성하는 것이라 본다.

이제와 생각하니 돈도 명예도 사랑도 한낮 일장춘몽이 될까 두렵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인생길에 허둥대며 살아 왔으니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송덕비는 못 세우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유익하게 살고 싶다. 생각하던 끝에 건강하고 베풀며, 누구 신세도 지지 않고 부지런히 봉사에 임하기로 한 것은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인생에 정답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배우며 실천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예컨대 시대에 따라 입장 차이에 따른 처신이 다르다. 시집간 딸 앞에서는 사위의 가사분담이 당연하다 여길 것이요, 며느리 앞에서는 아들이 주방의 도우미가 되는 것을 좋아하기 힘들 것이다. 금연운동은 본인의 건강과 가족, 이웃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애연가는 금연권유를 받아들이기 힘들고 구차스럽다. 서로의 단점 때문에 사네 못사네 하는 부부에게 최대한 맞추어 살고, 그래도 아니라고 여기면 이혼하라.’는 법륜스님처럼 단편적으로 비정상이지만 두 가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풍토가 이상적이라 여기는 의식구조다.

(2019.7.23.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