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계곡산행
여름의 끝자락 계곡산행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8.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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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염재균 수필가
사진 염재균 수필가
사진 염재균 수필가

 

 2019년 8월 18일(일요일)

 

토요일 오후만 해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내일로 예정된 산행을 가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었다. 그러나 내리던 소나기는 대지의 열기를 식히는 임무를 다하기라도 한 듯 이내 그쳤다.

일요일 일찍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 배낭에 넣고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바른 후 집결장소인 구)대전 시민회관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하여 함께 산행하기로 한 일행들을 기다렸다.

  이번 산행을 주관하고 있는 산악회 총무가 반갑게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눈 후 우리가 타고 갈 전세버스로 안내하였다.

 전세버스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타고 계셨는데, 회장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친절이 몸에 밴 분들 같았다. 총무가 참여 인원을 확인한 후 오전 7시 40분경에 출발했다.

회장과 총무 그리고 산악대장이 우리가 산행하러 가는 곳의 안내와 안전산행을 위한 당부의 말을 들으며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는 여름의 끝자락 산행에 대한 호기심과 산행 후 이어지는 점심식사와 물놀이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지리산은 말로는 많이 들었으나 실재로는 간 일이 별로 없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산행에 동참하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하다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여러 번 듣는 것 보다는 직접 가서 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이 말은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 선제(宣帝:BC 74~BC 49)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한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길(丙吉)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이었지만 아직도 실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였다. 병길이 조충국을 찾아가 선제의 뜻을 전하니 바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는 조충국이 명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을 물었다.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대답하였다.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선제에게 "기병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방책을 제시하였다. 이 방책이 채택된 이후 강족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계획, 집행할 때 현지를 한 번도 답사하지 않고 탁상공론에 매달릴 경우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산행할 곳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지리산의 서산대사길로 신흥교에서 산길을 따라 의신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점심식사 겸 휴식을 위한 만남의 장소인 대성교 주변의 한 식당까지 도착하는 코스였다.

  오전 8시 30분경 논산의 벌곡 휴게소에 들러 잡곡밥과 된장국 그리고 두 가지 반찬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는데, 국이 너무 뜨거워 입천장을 델 뻔 했다. 그래도 목이 감기 기운이 있어 남김없이 다 먹었다. 목구멍이 편해진 것 같다.

  우리를 태운 전세버스는 10시 40분경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근처의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가는 방향으로 계속해 가더니 산행의 출발장소인 신흥교 주변에 11시에 도착하여 일행과 함께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숲속의 산행을 시작했다.

  숲속의 그늘은 산행하는데 무덥지가 않아서 좋았으나 무더위가 여름의 막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았지만 등산로 주변에서 매미들의 합창소리와 시원하게 들리는 계곡물 소리는 돌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힘든 산행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활력소가 되었다. 산길은 비탈이 심하게 경사지게 나 있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과의 교행 시 조심스럽게 살펴야 했는데, 계곡 쪽으로는 수십 길 낭떠러지로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숲길로 접어들어 경사가 급한 곳을 여러 차례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벼룻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렸다고 전해지는 의자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의 의자바위는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처 들어와 의신사를 불태우고 범종을 훔쳐 가려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서산대사가 도술을 부려 범종을 의자로 바꾸자 이를 본 왜병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도망가 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의신사 범종은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의자가 되었다고 해 이 곳 지리산 옛길을 등산하는 분들은 한번 의자바위에 앉아 편안함을 느껴보고 사진 한 장을 남겨 추억으로 간직하길 권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서산대사 길에 대한 설명의 입간판이 눈에 띄어 읽어 보며 잠깐의 휴식을 취해 본다.

서산대사(1520년~1604년)는 의신마을에 위치한 원통암에서 1540년 출가하여 休靜(휴정)이라는 법명을 얻었다고 하며, 신흥~의신 주변에는 쌍계사, 칠불사, 의신사 등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신흥사가 있었던 신흥마을과 의신사가 있었던 의신마을 연결한 4.2㎞의 이 길은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무는 동안 오가던 옛길이라고 전해진다.

  지금은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어 이동하기가 편리해졌지만, 예전에는 험한 계곡을 따라 난 오솔길이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소중한 길이었다고 한다.

지리산 옛길을 따라 굽이쳐 흐르는 화개천의 물길은 맑고 투명하여 물속으로 풍덩하고 빠지고 싶지만 ‘추락주의’라는 경고표시와 출입을 통제하는 줄이 쳐져있고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살로 인해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약 2시간에 걸친 서산대사가 다녔다는 지리산 옛길의 산행은 막바지 여름이라 그런지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강했지만 그래도 울창한 숲속의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행이라 오기를 잘했다고 모두들 좋아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산행 후에 먹는 점심식사는 필자가 다닌 산행 중에서는 최고의 성찬이라 할 수 있는 영양탕과 닭백숙, 돼지불고기, 약간의 주류와 음료수, 시원한 수박까지 먹으니 산행의 피로가 싹 가신다. 식사 후 잠깐이나마 얕은 물속에 발을 담그니 피로에 지친 발이 ‘고마워요 주인님.’하는 듯이 속삭이는 것 같다.

  얕은 물인 줄 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가 발목 옆의 살갗부분을 물속의 울퉁불퉁한 돌에 살짝 스친 것이 따갑다. 물속을 걸어 다닐 때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차장 밖으로 가을을 향해 변해가는 들녘을 바라보면서 다음 산행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