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먹은 개가 따로 있나
풀 먹은 개가 따로 있나
  • 도움뉴스
  • 승인 2019.09.12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남상선 수필가
사진 남상선 수필가
사진 남상선 수필가

 

우리 속담에 < 풀 먹은 개 나무라듯 한다. > 는 말이 있다. 엉뚱한 일을 한 사람을 혹독하게 꾸짖고 탓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이 속담은 다음과 같은 일에서 비롯되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방이나 벽에 도배를 하기 위해 밀가루에 물을 붓고 끓여서 풀을 쑤었다. 풀은 식어야 끈적이기에 뜨거운 풀을 식히려고 뜰에 내놓았다. 잠시 후에 풀 그릇을 본 개가, 배가 고팠던지 그걸 다 먹어 치워 그릇이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그 때 도배할 풀이 없는 빈 그릇을 본 주인은 화가 나서 개한데 왜 먹었느냐며, 혹독하게 야단치고 때리기까지 한다는 이야기이다.

 

예서 개가 풀을 먹어 치운 것처럼 엉뚱한 행동을 한 사람을, 혹독하게 꾸짖고 탓하게 되는, 비유적인 말이 나오게 됐는데 이것이 바로 < 풀 먹은 개 나무라듯 한다.> 는 속담이다.

 

나는 어느 날 초상집 조문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지인의 승용차를 타게 되었다. 지인은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승용차는 어느 덧 농작물이 한창 자라고 있는 교외 들판 길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날씨도 청명한데 하늘하늘 춤추는 가도의 코스모스는 시골 향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질주하는 차가 30분 정도 신선한 공기를 가르고 있을 때 지인한테 전화가 왔다. 운전석엔 스피커 장치가 돼 있어 운전자가 신경을 쓰지 않고도 자동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귀를 자극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가 들어도 분명히 여인이었다. 구사하는 어휘, 주고받는 말의 내용, 말투로 보아 부인의 전화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지인은 난처한 듯 전화를 받으며 조수석에 있는 나를 의식해서인지 웅크린 자세로 꼼짝 못하고 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으로 보아 부인한테 잡혀 사는 엄처시하의 가장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당신이 내지른 소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네. 당신 친군가 뭔가 재혼했다는 그 남자 눈깔 하나는 제대로 박혀 예쁘고 돈 많은 년 잘 물었다고 소문났더군. 그런 연놈들 하고 붙어 다니고 한 통속으로 놀아나느라 어제도 거짓말 한 거잖아 . 이 원수야 ! 그렇게 남의 속 문드러지게 하지 말고 차라리 날 죽여 ! ”

 

집에서 하던 부부싸움이 끝나지 않고 연장전이 되는 것 같았다. 곁에서 듣는 내가 민망스러워 자리에 앉아 있기가 거북했다. 남편한테 비속어로 쏘아붙이는 반말, 떵떵거리는 어조로 남편을 몰아치고 숨도 못 쉬게 하는 위압적 자세는 보지 않았어도 표독한 여인 같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남편인지 죄인인지 모를 일이었다. 전화 받는 남편은 쩔쩔매며 말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운전자도 거북하고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내 자신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하더니 갑작스런 아내 전화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남편이었다. 일순간에 묵사발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눅이 들었는데도 애써 태연한 체를 하고 있는 지인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부인이 미인이라 들었는데 남편은 미인의 일격에 힘을 못 쓰고 있었다. 삽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아내는 세 치의 혀로 비수가 되는, 막말을, 비속어로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아니, 세치밖에 안 되는 혀로 자신을 망치고 있었다. 그 동안 굴려온 세치의 혀로, 평생 해도 감당이 안 되는 말을 무자비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자신은 여왕처럼 무소불위의 언행으로 남편을 몰아세우고 있지만 실은 자신을 저질 수준의 하녀로 몰락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미모의 얼굴에 어울리는 말투로 남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세 치의 혀였다면 < 비단보의 개똥 >만은 면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언성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다. 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가 살아나고 독이 오르는지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교양 없는 말투에, 막말로, 객기 어린 만용으로, 남편을 쥐 잡듯 하고 있었다. 남편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기라도 할 것 같은 시르죽은 모습이었다.

 

자신은 미모의 얼굴이어서 그런지 주눅들어 말도 못하고 있는 남편을 오만과 불손, 교양 없는 언행으로 남편을 더욱 형편없는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남편도 아내도 불쌍하기 이를 데 없었다.

< 비단 보의 개똥 > , 괜찮은 남편을 구설수에 오르는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었다.

유별나게 잘나고 똑똑한 여인의 당당함과 위대함에 존경심까지 생겨나는 것이었다.

 

순간 제자 결혼식 주례를 섰을 때 당부했던 주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 항상 결혼 당일 같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 달라.>는 얘기였다. < 지어미가 지아비를 항상 왕처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지어미는 여왕의 대접을 받게 될 것이고, 지아비가 지어미를 하녀처럼 대하면, 지아비는 그 순간부터 종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여기에 구태여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

 

자신은 낮출수록 높아지고, 높일수록 낮아진다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여왕이 되고 싶으면 남편을 왕으로 섬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서로 보고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말을 해서는 아니 되겠다. 상대방 체면을 훼손시키는 무분별한 말은 더더욱 아니 되겠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지간이라도 기본적인 인간 덕목에 어긋나는 일거수일투족이 돼서는 아니 되겠다. 이것을 어기면 서로의 인격에 흠이 가는 불상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풀 먹은 개가 따로 있나!

남편을 인격 없는 게처럼 몰아붙이면 바로 그 남편이 풀 먹은 개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 아내들은 남편을 풀 먹은 개 취급을 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눈을 감아 볼 일이로다.

아니면, 남편이 아내를 풀 먹은 강아지로 여기는 사육사가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로다.

 

우리 집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여인으로

남편을 풀 먹은 개 나무라듯 하는 여왕 천국은 아닌지도 맥을 짚어 볼 일이로다.

 

아니면, 남편이 제왕적 폭군이 되어

아내를 풀 먹은 강아지 나무라듯 하는 가장은 아닌지도 청진기를 대어 볼 일이로다.

 

아니, 우리 부부들은 세 치의 혀를 잘못 굴려

자신들이 악처와 악부가 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보들은 아닌지도 확인해 볼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