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한테 간 선물, 배 두 상자
도둑한테 간 선물, 배 두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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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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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상선 수필가

 

   한가위 추석 명절이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손꼽아 기다리던 한가위 날, 설날이건만 어른이 된 언제부터인지 걱정부터 앞서는 날들이 되고 말았다.

아마도 돈 들어갈 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제수 준비에 집안 가족들 먹을거리 준비, 신세졌던 사람에게 사람 노릇하기, 웃어른 찾아뵙기, 챙길 분들 용돈, 세뱃돈 나갈 데가 많아 지갑 채워놓기가 이만 저만 부담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걸 생각한다면 어린 시절에 손꼽아 기다렸던 설 명절 추석 명절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이번 추석 명절도 그대로 넘어갈 수 없어 고마운 분들을 챙기는 마음을 배 박스 몇 개에 담아 보았다. 그 마음의 박스는 승용차 안에 있다. 기상하자마자 그걸 가지러 승용차로 향했다. 승용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있었다. 승용차 트렁크를 열었다.

허나, 있어야 할 배 두 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고마운 분들께 드릴 명절 인사용 선물인데 감쪽같이 없어졌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온 데 간 데 없이 트렁크 속에서 없어졌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기억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차 안 다른 공간까지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찾던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의문이 풀리지 않아 집에까지 들어와 찾아보았다. 그래도 찾는 배 두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집을 나와 차 안을 재점검해 보았다.

무엇이 문제가 되어 그런지 승용차 안을 다시 살폈다. 한참 두리번거리며 살피던 중 운전대 앞의 계기판에 빨간 표시 신호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바짝 다가가 살펴보니 조수석 옆의 문이 잘 닫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걸 확인하지 못한 채 자동키를 누르고 집에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밤손님은 힘 안 들이고 차 트렁크를 쉽게 열고서 배 두 상자를 가져간 것이었다.

 

선물할 것이 도둑한테 가다니 슬그머니 속상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밤손님 탓보다는 내가 잘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아 밤손님에게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선물하게 되었다. 순간 자책의 마음이 앞섰다. 얼마나 궁하면 배 한 상자 사 먹을 돈이 없어 그걸 가져갔을까. 오히려 연민의 정이 앞서고 있었다.

 

엄밀히 따져 보면 기꺼이 주고 싶었던 사람한테 가야 할 배 두 상자가 대상만 바뀐 것이

아닌가. 한 쪽은 내가 존경하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인데, 그걸 안 받아도 되는 사람이다. 물심양면으로 빈곤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내가 알도 못하고 좋아도 않지만 돈도 없고 마음도 가난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결과는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거나 아니면, 밤손님이 가져가거나 어차피 배 두 상자는 나한테서 떠나야 할 물품이다.

결국은 전자 후자 할 것 없이 배 두 상자가 나한테서는 떠나야 하는 똑같은 결과이다.

 

이같이 무수한 범사 똑같은 일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을 느끼며 살기도 하고, 혹자는 불행의 주인공이 돼 한숨과 짜증으로 얼룩진 생활을 하기도 한다.

전자는 긍정적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항상 밝은 얼굴에 행복이 묻어나는 사람이다. 후자는 그렇지 못해 부정적 생각으로 늘 남을 탓하고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사람이다. 그러니 생활 자체가 어둡고, 짜증과 불평으로 일관된 삶이다.

같은 일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도, 불행한 삶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언필칭(言必稱) 전자의 삶은 현자(賢者)의 삶이요, 후자는 둔자(鈍者)의 삶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자로 살아야겠는가, 아니면 둔자로 살아야겠는가?

 

똑같은 상황인데도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삶도, 불행한 삶도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다 보니 신라의 선각자 고승 원효대사 일화가 떠올랐다.

 

약 1400년 전,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는 45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먼 길을 걸어 몇 날 며칠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깊은 산 속 아늑한 곳에 쓰러져 곤한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잠을 자다 잠결에 목이 말라 머리맡을 더듬었다. 물그릇을 찾아 물을 벌컥벌컥 맛있게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그곳은 바로 어느 무덤 앞이었다. 간밤에 맛있게 마셨던 건 그냥 물이 아니라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 원효대사는 갑자기 창자가 뒤틀리면서 뱃속의 모든 것을 토해낼 듯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순간 원효대사는 무릎을 치면서 개달은 게 있었다.

 

어젯밤 그 물을 마실 때는 그토록 사원하고 맛이 좋았는데 아침에 깨어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란 것을 알고서 구토가 났다. 밤중의 마음과 아침의 마음은 다르지 않거늘 모르고 마실 때는 시원하던 것이, 알고 나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효대사는, 여기서 모든 것은 오로지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지족상락(知足常樂)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는 뜻이다.

 

선물은 누군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기꺼운 마음으로 주어야 하는 것인데 나는 도둑한테 선물을 준 셈이다. 처음엔 언짢고 기분이 좀 씁쓸했다. 하지만 사색에 잠겨 원효대사의 일화 속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를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 누군가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주어야 할 선물이 결과는 도둑한테 가고 말았지만 깨달음은 내 몫이었다. 깨달음을 준 도둑한테 감사한다. 또 원효대사께 느꺼운 마음을 표한다.

 

처음에 언짢고 씁쓸했던 마음이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뀐 것은 어쭙잖은 내 인생이 조금은 익어간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살아오는 중 조금은 긍정적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모두가 스승님 같은 분들이기 때문이다. 추석명절을 계기로 깨달음을 준 밤손님이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를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해 준 원효대사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도둑한테 간 선물, 배 두 상자

 

이건, 나를 익어가게 하는 다리가 돼 주었다.

인생 설익은 꼭지 하나가 빠지게도 해 주었다.

원효대사를 만나 깨달음을 새기며 살 수도 있게 해 주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분수를 알며, 감사하며 살라하는 지혜도 깨우쳐 주었다.

 

지족상락(知足常樂)이란 답례품 !

밤손님이 그리 밉지 않은 건 무슨 연유에서인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