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록 새록 생각나는 얼굴들
새록 새록 생각나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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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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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남상선 수필가
사진 남상선 수필가
사진 남상선 수필가

 

   시내 나갔다가 비를 맞고 돌아왔다. 전 같았으면 이런 비엔 아내가 마중을 나와 우산을 같이 쓰고 걸었을 텐데, 이젠 그런 사람이 없다. 집에 들어와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겼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얼굴들이 희비로 수를 놓고 있었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얼굴들이 날 울리기도, 그립게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자주 마음을 울리고 있는 아내. 한 평생 자랑으로 살아야 할 정길순, 정지식 제자. 선배이자 인생 스승인 이용만 선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고마운 분들, 세상 다하는 그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전용돈, 김순자 부장, 자미지미 남성문여사, 오기환 친구 ,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새록새록 생각나는 얼굴들이다.

특히 비 내리는 날이나 외로움을 맥질하는 밤에는 으레 껏 생각나는 판박이 메뉴의 얼굴들이다. 오늘 비 내리는 그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생에 울보였는지 울적한 생각들이 날 가만 두질 않았다. 비에 젖은 구두를 보니 아내 생각이 났다. 여러 학생들 앞에 서는 선생님은 좋은 구두 신어야 한다며 내 구두는 엘칸토 제화 사다 놓고, 자신은 집에서 일하는 주부이니 이런 신발이 제격이라며 메이커도 없는 구두 신던 아내 생각이 났다. 월평동 도솔산 상수도 길을 걸어 출근하는 날 따라오며 땀나면 수업 못한다고 내가 지고 가는 책가방을 빼앗아 < 당신 가방은 내가 질게요! > 하던 모나리자 미소의 얼굴이 날 울리고 있었다.

 

하늘엔 해도 달도 없었다. 아내는 뭐 그리 급한 길인지 깜깜한 그 밤에 홀연히 가버렸다. 보내고 난 허전함은 모든 걸 다 잃은 상실감이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먼 산만 바라보며 밥맛까지 잃어가고 있었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그걸 알고 층 다른 교무실서 교장 교감 선생님이 오셨다. 점심을 먹이려고 손목을 잡고 끌고 하여 구내식당으로 구인했다. 사람냄새 물씬한 홍상순 교장님, 전용우 교감(그 당시) 선생님이기에 잊을 수 없었다. 게다가 TJB 교육대상까지 받게 헤 주셨으니 평생 갚아도 보은이 안 될 고마운 두 분이었다.

 

아내 보내고 삶의 의미조차 잊은 채 한숨만 토하고 있을 때 < 발신인 없는 택배 >가 왔다. 그건 바로 한약 상자 보약이었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약보다 영험한 영약의 힘으로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그 영약의 위력으로 내가 살아났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가슴을, 사랑으로, 정성으로 느끼게 되었다. < 발신인 없는 택배 >의 주인공 그런 정길순 제자 교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천연기념물 같은 70년대의 대전 여고 천사 제자를....

 

추운 겨울 날 보일러는 틀었느냐 식으로 안부를 물어오고, 연금 타는 것 저축하느라 방 보일러 가동도 않고 차갑게 지낸다고 경고까지 주던 충남고 80년대 정지식 제자, 혼자 사는 외로움 달래준다고 대천 자기네 집 근처에다 전원주택까지 지어 준다고 했던 전대미문의 들어 보지도, 보지도 못했던 그 자랑스러운 제자. 게다 부인까지 가세하여 바리바리 싼 반천 그릇으로, 열무김치로 날 울렸다. 겨울 김장까지 덤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부처님의 자비를 여한 없이 쏟아주었다. 아낌없이 퍼주었던 용광로 온혈가슴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친구이자 대부인 전용돈 스테파노, 그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늘 힘이 돼 주었던 나의 영적 지도자요, 친구인 그. 송무백열(松茂栢悅)의 기쁨을 함께 했던 둘이 아닌, 한 사람, 을지병원에서 아내 마지막 보내던 날 대세를 주고, 꼬박 사흘 자리를 뜨지 않고 입술까지 태워가며 걱정을 해 주었던 볏, 딸 주례까지 서슴없이 해 주었던, 내 잊을 수 없는 보살 같은 친구 ,

 

아들 결혼식 서울서 하던 날 관광차 서울 갈 때 차안에서 먹을 간식거리, 술안주를 배달 차 왔다가 딱한 사정 알고 눈이 벌겋게 울었던 자미지미 남성문 여사님, 남자가 어떻게 반찬 해 먹냐며 10년 세월 한결같이 반찬을 만들어주셨던, 감사로 보은이 안 되는 여인, 게다가 겨울 김장까지 덤으로 얹져 날 울렸던, 따뜻한 어머니 가슴의 또 다른 지상보살,

 

 

동병상련이 우리의 전유물인 양 동고동락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던 오기환 친구, 뭐 그리 좋은 거라고 사랑하는 짝까지 함께 보내고 사궁지수의 한을 안고 사는 두 사람, 형제나 자식한테도 못하는 이야기까지 허물없이 주고받던 그이, 인생 서럽다지만 서로 버팀목이 되어 피차간 힘이 돼 주는 좋은 사람,

 

선배이자 벗이요, 인생 스승이신 우리 이용만 형님, 내 평생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고맙고 존경스러운 분, 내 교직생활의 견인차 역할로 39년 교직 생활을 순탄하게 해 주신 분, 피는 다르지만 혈육의 정을 느끼게 해주시고 의리가 있으신 분, 아침마다 배드민턴 파트너가 돼 날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신 내 인생 트레이너,

 

교직 동료이자 친구인 김순자 부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되는 천사, 마냥 베풀고 주는 삶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인, 내 힘들고 절망하고 있을 때 길잡이가 돼 주었던 하늘이 내린 향내 나는 보석, 배려와 따뜻한 가슴으로 든든하게 지켜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친구,

 

 

기쁠 때나 슬플 때 외로울 때

새록새록 생각나고 보고픈 얼굴들

있을 때 잘 해주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항상은 아니라도

가끔은 생각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적당히 걱정도 해 주며 사는 삶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궁금하게 생각되면 안부라도 물으며 사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무더위나 추위에는

걱정도 해주고 전화라도 오가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감기로 콜록대는 계절엔

예방주사라도 맞았는지, 물어보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으냐, 걱정도 해 주며 사는 삶이었으면 더욱 좋겠다.

 

태풍 불 때, 홍수가 질 때엔,

피해는 없는지 전화라도 주고받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새록새록 생각나는 얼굴들

나처럼 떠나보내고 그리워하고 후회하는,

맹탕 같은 바보의 삶은 아주아주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