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와 복수자
어벤져스와 복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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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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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매번 무거운 주제만 다룬 것 같아서 오늘은 가볍게 영화 얘기를 해 보기로 한다. 과거에 우리 어린 시절에는 한자를 많이 쓰는 사람이 참 부러웠다. 말할 때 <논어>나 <명심보감> 등을 인용하면 참으로 유식해 보이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냥 한문을 많이 아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것이 대학에서 한문 공부하게 된 계기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논어>의 구절 중에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라.(己所不欲 勿施於人)”라는 글을 보고 참으로 감탄하며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남자만 4형제로 자란 필자는 셋째 아들이라 어머니가 아프실 때면 늘 설거지를 도맡아했다. 다른 형제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실제로 필자도 하기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한 말씀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결혼하면 설거지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렇게 한자어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생활에 한자어를 많이 쓰고 있음을 알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너 어디 사니?”라고 해도 될 것을 “너 거(居)하는 곳이 어디니?”라고 하는 자신으로 본 것은 태능중학교에 발령받아 학생들 앞에 서고 나서부터였다. 가르치고 싶은 것은 많고, 아이들은 못 알아듣는 것이 답답해서 퇴근 후 교단의 왕선배인 부친께 하소연을 하였다. 부친께서는 “얀마! 가서 만화영화나 봐.”라고 한 마디 하셨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필자는 그날부터 일주일간 퇴근하면 만화영화만 보았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수업에 들어가니 대화가 통했다. 눈높이가 맞았던 것이다. <논어>의 한 구절보다는 아이들은 ‘똘똘이 스머프’이야기가 훨씬 다가 왔던 것이다.

그렇게 한문(한자)이 우리말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을 때는 한자로 쓰는 것이 더 높고 훌륭해 보였다. ‘늙은이’보다는 ‘노인’이 고급스럽게 느꼈고, ‘계집애’보다는 ‘여자’가 듣기에 부드러웠다. ‘고맙습니다’보다는 ‘감사합니다’가 더 공손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순 우리말보다는 한자어가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은 오랜 세월 지나면서 길러진 문화적 사대주의 성향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어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어로 써도 좋을 자리에 영어나 불어를 섞어 쓰면 자신이 지식인으로 보이는가 보다. 물론 우리말이 없어서 사용하는 외래어야 어쩔 수 없지만,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지나치게 외국어를 사용하는 예가 많다. “좀더 디테일하게 설명해 볼까요?”, “너 때문에 자꾸 일이 디레이 되고 있잖아.”, “나 좀 엣지있지 않니?” 등과 같이 자연스럽게 영어나 일본어, 불어 등을 섞어서 사용한다.

필자가 5~6년 전부터 관심 있게 연구하는 분야가 ‘문화문법’이다. 문법의 범주에 문화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그 나라의 문화(민속을 포함한 문화)를 바로 알지 못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무신 거꾸로 신다.’라는 말을 들으면 금방 무슨 뜻인지 알지만 외국인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국의 군대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군대 간 제자들이 ‘워커를 바꿔 신는다.’고 한다. 입대 후에 애인을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화를 문법에 적용하여 <한국어문화문법>이라는 책도 냈다.

중국어를 전공한 젊은 교수가 연구실에 와서 혼자 킥킥대고 웃는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서는 어벤져스를 ‘복수자’라고 한다는군요.” 그리고 나서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을 죽 불러주었다. ‘윈터솔져=동병(冬兵=겨울 병사)’, ‘캡틴 아메리카 = 미국대장(米國隊長)’ 등등.

 내가 이상한 것인가, 사회가 변한 것인가? 예전에 한자로 듣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웠는데, 이번에 새삼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였다. 복수자, 겨울병사, 미국대장이라고 하니 참으로 촌스럽지 않은가? 한국의 문화가 한자문화권에서 영어문화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 외국의 문화를 제대로 접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K-POP, K-DRAMA 등이 모두 가장 한국적인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신난다. 한국어를 전공했으니 가장 세계적인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