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응인(鷹人) 매사냥 외길 인생 50년
[아침마당] 응인(鷹人) 매사냥 외길 인생 50년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10.2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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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길공섭 대전문화원연합회장
사진 길공섭 대전문화원 연합회장
사진 길공섭 대전문화원 연합회장

 

매사냥이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2010년 11월 16일 등재되는 영광을 안았다. 외길인생을 묵묵히 걸어왔으며 전통놀이 문화를 오늘에까지 전승해온 응사(鷹師) 박용순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매 조련에 취미를 같고 매사냥 기능보유자 강종석 에게 사사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르는 기초가 됐다. 2000년에 대전 무형문화재 제8호 매사냥 기능보유를 인정받아 그동안 매사냥 전통을 이어온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전 동구 이사동에 고려응방을 차려놓고 매년 몇 번씩 매사냥 시연을 해 우리 전통놀이 문화인 매사냥 전수에 앞장서고 있다.

매는 나이와 포획 후의 연수에 따라 그 명칭이 정해진다. 초진이는 1년 동안 사육 훈련시킨 매이며, 수진이는 3년 이상 훈련시킨 매를 말하며, 산진이는 야생에서 잡아다가 1년 이상 훈련시킨 매다. 그리고 사냥을 하는 매를 송골매라고 하며, 새끼를 키워 사냥에 쓰는 매를 보라매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매사냥역사는 기원 전후 고조선시대에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으로부터 이를 습득했다. 그 후 고구려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성행했다.

또 해동청이라는 질이 좋은 사냥용 매는 간도와 북한지방에서 산출되는데, 중국과 일본에 수출돼 이들 나라로부터 귀히 여겨졌다.

고려시대 충렬왕은 처음으로 매의 사육과 매사냥을 담당하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두었다. 또한 이의 경영을 위해 몽골에서 기술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응사(鷹師)는 예전에 응방에 속해 매를 부려서 꿩을 잡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이름이다.

매사냥은 매를 훈련해 야생 상태에 있는 먹이를 잡는 방식으로 4000년 이상 지속된 민속 있다. 아시아에서 발원해 무역과 문화교류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에 매사냥은 식량 확보 수단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자연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전통 민속놀이로, 야외활동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60개 이상 국가에서 전승되고 있다.

매는 한로(寒露) 동지(冬至) 사이에 잡아서 길들인 후 겨울 동안 사냥에 나간다. 겨울이 되면 야산에 매 그물을 쳐서 매를 잡는데, 처음 잡은 매는 야성이 강해 매섭게 날뛰기 때문에 숙달된 봉받이가 길들이기를 한다.

매를 길들이기 위해서 방안에 가두어 키우는데, 이를 ‘매방’이라고 한다. 매를 길들이는 매 주인은 매방에서 매와 함께 지내며 매와 친근해지도록 한다. 매사냥은 개인이 아니라 팀을 이루며 꿩을 몰아주는 몰이꾼(털이꾼), 매를 다루는 봉받이, 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봐주는 배꾼으로 구성되고 있다.

‘시치미 떼다’라는 속담도 매사냥에서 나왔는데, 매 주인이 자신의 매임을 표시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표(소뿔을 갈아 길이 5㎝ 정도의 조각에 이름을 새김)를 ‘시치미’라고 한다.

박용순 응사는 “천연기념물인 매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매사냥 전수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매 사육허가도 안 내줘서 무형문화재가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매사냥을 배우는 문하생이 4명뿐”이라며 “제도적 행정적 개선을 해줘야 전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제도적 장치의 변화와, 문화재청이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매사냥의 맥을 잇기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소중한 전통 민속 문화의 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기능보유자가 제도적인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 최소한의 생계비가 지원돼 긍지를 가지고 전통 민속 놀이기능의 맥을 이어 가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