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단 세 문장이다. 사람을 위로하는 데 단 세 문장이면 됐다.
사람들은 풀꽃처럼 일어났다. ‘짧고 쉽게’ 보고 판단하지 말라. 그 판단에 상처받지도 말라. ‘자세히 오래’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풀꽃이든, 사람이든. 나태주 시인은 종이 너머에서 이렇게 외치며 계속 사람들을 일으키고 있다. 아주 오래오래.
글 이성미 사진 한상무
나의 시를 키운 것은 세상
그래서 요즘 나태주 시인의 시는 바쁘다. 찾아가야 할 틈새가 너무나 많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어머니가 손수 입에 넣어주시던 따스한 죽을 닮았다. 푹 끓여 목에 걸리는 까슬까슬함 없이 부드럽게 풀어진 죽. 소박하지만 오랜 정성으로 끓여 깊은 맛을 내는 죽 한 그릇은 어떤 병이든 이겨내게 했다. 그의 시 역시 세상과 싸우다 지치고 상처 입은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다. 대표작은 2002년 발표한 시 ‘풀꽃’이다.
그러나 나태주 시인은 “‘풀꽃’은 내가 썼지만, 그 시를 키운 것은 세상이다”라고 말한다. 다만 시인은 시가 사람의 상처와 함께 자라나길 원치 않는다. 시인은 척박한 마음에 시가 날아가 조용히 싹 틔우길, 그리고 희망으로 자라나길 바랄 뿐이다. 이런 바람은 1989년 발표한 ‘시 2’에도 잘 드러나 있다.
누구나 시가 내는 불빛을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그는 짧고 단순하고 쉬운 문장으로 시를 쓴다. 그는 자신의 시를 한마디로 “세상에 보내는 연애편지”라 정의한다.
“사실 쉽게 읽히는 글, 짧은 글이 쓰기에는 더 어렵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도 말했죠. ‘읽기 쉬운 글이 쓰기는 더 어렵다’라고. 다만 저는 50년 동안 시를 쓰다 보니 살면서 얻은 묵직한 교훈과 감정을 저만의 말투로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시란 ‘세상과 삶을 오래 고요히 들여다보다 문득 얻어낸 말’입니다. ‘울컥 솟구치는 감흥을 쓰윽 표현하는 문장’이고요. 저는 오래 본 것을 문득, 울컥한 것을 쓰윽 옮겨 누구나 쉽게 보도록 할 뿐입니다.”
시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풀꽃’을 국민 애송시로 만든 비결은 시인이 ‘자세히’, ‘오래’ 볼 줄 아는 능력, 집중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집중력을 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즉 ‘자기를 잊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마음의 고요를 얻고, 그다음에 시선을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 관찰하는 대상의 작은 몸짓도 크게 보이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나태주 시인은 그래서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세상이 고요로 물든 시간이 시 쓰기에 가장 좋다고 말한다. 이 시간에는 마치 마음이 찬물이 고인 우물처럼 맑아진다고. 그리고 시인은 그때에 그 물에 노는 물고기를 잡듯 생각을 건지고 시를 건진다.
“시의 문장은 몰아의 경지에서 건져내는 금싸라기 같은 것입니다.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도 인생의 화두로 ‘성장’을 제시하면서 그 하위개념으로 ‘소통’, ‘몰아의 경지’, ‘죽음을 기억하는 삶’을 말했습니다. 이 몰아의 경지는 집중력과도 연결됩니다. 집중력을 갖기 위해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것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과 수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년이면 나태주 시인이 등단한 지 햇수로 50년이 된다. 반세기를 시인으로 살며 그는 <풀꽃>,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마음이 살짝 기운다> 등 마흔 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했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등의 산문집도 있다. 평생 교사, 시인으로 살아온 그는 2014년 공주에 풀꽃문학관을 건립해 풀꽃 시인으로서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나태주 시인은 이처럼 꾸준히 작가의 길을 걸어올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비결은 ‘결핍’임을 고백한다.
“돌이켜보면 저는 늘 마이너(minor)로 살았습니다. 그 마이너의 힘, 개인의 갈급함과 인생에서의 결핍이 나로 하여금 계속 시를 쓰게 했다고 봅니다. 시의 에너지는 호기심, 그리움,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것 또한 마이너의 정서와 연결됩니다.”
그의 대표작 ‘풀꽃’ 역시 마이너의 정서와 연결된다. 풀꽃은 한눈에 감탄할 만큼 화려하지 않다. 고개를 돌리게 하는 향기도 없다. 그래서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 풀꽃만의 고요한 매력을 발견한다. 고고한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시인 역시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 풀꽃을 들여다보며 위로를 얻곤 했다. 종이에 시어가 아닌 풀꽃을 그리며, 여리고 작은 것에 경탄하는 시인의 눈을 얻었다.
천천히 오래 보고, 더 오래도록 사랑하라
시인이 당부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가 지난 2월에 출간한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아, 강건하여라.” 앞서 말했듯 그의 시는 세상에 보내는 연애편지다. 그 편지 안에 사랑의 감정이 없을 리 없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작은 풀꽃도 사랑해야 한다. 세상에 가득 찬 혐오를 지우고 사랑을 그려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생존하는 일이 급급해 ‘자세히’, ‘오래’ 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기계화, 도시화, 전자 문명화가 되어 삶의 형태가 일회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에 대한 대안과 각성이 바로 ‘자세히, 오래’입니다. 이것은 그냥 풀꽃이라는 사물에 대한 것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으로까지 확대되는 문제입니다.”
자세히, 오래 보는 힘은 타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도 지울 수 있다. 그는 타인에 대한 혐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자기혐오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경계한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끝없이 타인을 아끼고 사랑하고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존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나도 남도 좋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기심이 너무 강합니다. 그리고 성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상처를 입고 힘들어합니다. 자기를 조금씩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낮아져야 합니다.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는 사물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사람의 눈에 풀꽃이 보일 리 없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자주 목격하기 위해서는 잠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아니 그 전에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조금만 더 자세히, 더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