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어디에서 오는가
악플은 어디에서 오는가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12.1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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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11월호

무심코 던진 사소한 말도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그런데 그냥 스쳐가는 말이 아니라 평생 남을 수 있는 글이라면, 사소한 말이 아니라 공격적인 비난과 모욕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글을 쓰고 있다면? 악성댓글은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는 치명적인 흉기다.

 

 

연예인에게 집중되는 악성댓글

가수 겸 여배우 설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악성댓글(악성리플, 악플)로 인한 우울증이 점차 심해지면서 자살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사망 한두 달 전부터 불안 증세가 심해졌고, 출연하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하차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악플로 인한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가수 유니가 1집 활동 때부터 계속 이어진 악플 테러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2008년에는 배우 최진실이 안재환의 사망과 관련된 거짓 소문과 악플로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최진실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뼈대로 한 이른바 ‘최진실법’ 도입이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결국 댓글 실명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정보통신망법에 사이버모욕죄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추진되었다. 이후에도 특정인, 특히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악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많은 피해자들이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을 호소했다. 설리의 죽음은 악플이 더 이상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밝혔고, 악플러들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자신을 향한 악플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도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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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댓글의 기원을 찾아서

사실 익명으로 남기는 댓글은 인터넷 이전부터 존재했다. 공공장소나 담벼락에 쓰던 ‘낙서’ 같은 것은 일종의 오프라인 댓글이었다. 다만 이런 낙서는 특정 공간에만 제한적으로 기록되었기에 파급력이 크지 않았고,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배설하는 정도의 기능만 수행했다. 또한 악성댓글은 다수의 집단이 근거 없는 사실로 죄 없는 소수를 극한까지 몰고 간다는 점에서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시킨다. 당시 마녀사냥의 피해자들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었다는 점 또한 지금의 악성댓글 테러와 유사한 지점이다. 또한 소비자가 미디어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과거 오프라인 시절의 독자편지 같은 것이 기원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 이전의 미디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일방향 미디어였고, 출판사나 방송국에서는 독자나 시청자들이 콘텐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편지가 일종의 피드백 창구가 되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나 논란이 되는 내용의 책이출간되면 출판사는 독자들의 분노에 찬 편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오프라인에서 제한적으로 주고받던 메시지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실시간 쌍방향 메시지’가 되었고, 그 확산 속도 역시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특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형식이 개인 간 오가는 이메일에서 게시판과 댓글의 형식으로 바뀌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더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카페, 블로그, 게시판 문화가 확산되었고, 자연스럽게 댓글 문화도 보급되었다. 댓글은 ‘싸이월드’ 같은 커뮤니티, 인터넷 뉴스기사에도 접목되면서 댓글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베스트댓글’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인터넷 공간이 익명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익명성을 악용해 댓글은 상대방을 글로 공격하여 심리적인 타격을 입히는 도구가 되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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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

그렇다면 악플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악플러들의 내면에는 어떤 삐뚤어진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걸까? 전문가들은 악플러들이 대부분 심리적 열등감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억압된 감정을 발산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과 짜릿한 느낌을 맛보려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은 자신의 분노, 비난의 감정 등을 쉽게 올릴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마음껏 올려도 자신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흔히 생각 없는 10대들이 주로 악플을 달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경찰에 적발된 악플러들을 보면 40~50대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런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순간적으로 짜릿한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익명의 공간에서 악을 응징해야 한다는 심리도 한 몫을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정의의 사도’가 되곤 한다.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로의 보복운전도 이와 비슷한 심리다. 아울러 군중심리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 악플을 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비난과 부정적인 글 을 올리는 상황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배설한다. 게다가 악성댓글은 알코올 의존증이나 도박 중독과 같이 강박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중독성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악플이 만들어진다.

 

악성댓글을 막기 위한 방법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경찰에 접수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발생 건수는 15,926건으로, 2017년 대비 약 19.3% 증가했다. 올해도 8월까지 벌써 1만 건을 넘어섰다. 사회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수치는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악성댓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한 처벌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정식기소가 되지 않아 재판을 받을 수 없었고, 벌금 혹은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악플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면 확실한 처벌을 통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악플을 달면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가해자들도 압박감을 느끼고 자제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각종 포털과 SNS 플랫폼에서 시스템적으로 악플을 걸러내는 것도 방법이다. 인스타그램은 이미 2016년부터 모욕 키워드를 차단하는 악플 방지 시스템을 적용하기도 했다. 사실 여러 포털 사이트에서 댓글은 트래픽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 트래픽은 광고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포털 역시 악플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설리 사망 사건 이후 다음이 연예뉴스 기사에 댓글을 차단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댓글이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만큼 무조건 차단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악성댓글이 사라지려면 대중들의 성숙한 인터넷 문화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나의 댓글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의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이상우 님은 협성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문화비평가와 기업의 역사 집필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