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와 갑질
금수저와 갑질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20.02.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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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살아가면서 언어는 항상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행하는 단어가 있고 필요에 따라 생산되기도 하며 발명으로 인해 신생단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과 갑질과 을질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대두되었음을 본다. 세상에 살면서 갑질 한두 번 안 당해 본 사람도 없을 것이고,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흙수저의 설움을 겪어 본 사람도 많을 드믈 것이다. 필자의 세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베이비 붐’이라는 용어를 달고 태어났기 때문에 생존의 본능이 더 강해서 갑질이고 금수저고 하는 단어를 따질 정신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잘 살게 되니 이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는 작업 중에 이러한 단어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재산의 대물림을 자식에게 하는 경향이 있다.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는 배고픈 과거를 겪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회사도 상속하고, 교회도 세습하고, 학교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경향이 있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즉 ‘부모의 사회ㆍ경제적 지위가 개인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집안 형편이나 부유한 정도를 수저의 재질에 비유하여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따위로 계급을 나눈다. ‘수저 계급론’이 회자될 만큼 한국의 상속형 부자 비율이 미국, 중국, 일본 등 4개국에서 가장 높았다.≪부산일보 2017년 1월≫ 그러다 보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고생을 잘 모른다. 아버지의 대형교회를 물려받고, 아버지의 학교를 물려받아 이사장이며 총장까지 후손들이 싹쓸이하기도 한다. 우선 금수저의 사전적 의미를 보기로 하자.(이 단어는 이미 표준어대사전에 실려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금수저’는 “「001」금으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을 아울러 이르는 말. 「003」부유하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 여유 따위의 좋은 환경을 누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는 주로 「003」의 경우를 말한다. 반면에 ‘흙수저’는 「001」“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이 흙수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를 말하는 것이니 50 대를 넘어선 사람들은 거의 흙수저 출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수저 출신이 세대교체로 사회의 전반에 자리 잡으면서 갑질도 심해지고 있다. 요즘은 갑질을 신고하는 곳도 생겨났지만, 갑질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탄하면서 쓴 소주잔 기울이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갑질과 을질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갑질’은 “「001」“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을 말한다. 다음으로 ‘을질’은 「002」“정도, 지위, 수준 따위가 상대보다 아래에 있는 자가 상대를 호령하거나 자신의 방침에 따르게 하는 짓”이라고 나타나 있다. ‘을질’에 대한 풀이는 요즘 널리 알려진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요즘에는 “갑질 당하면 바로 신고하는 것과 ‘병’에게 갑질하는 것까지 통틀어 을질”이라고 한다. 자신은 지금까지 을로 살았다고 하지만 인간이 사는 사회는 언제든지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한다. 갑이라고 해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그도 언젠가는 을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병’ 또한 언제나 ‘병’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필자의 세대는 이제 저물어 가는 태양이다. 숱한 갑질도 당해 봤고, 지겹도록 을 노릇도 해 보았다. 갑질하지 않으려 했지만 누군가는 필자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반성해 본다. 세상에는 불평등하게 태어났지만 살아가는 데는 모두가 인격을 존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