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떨다와 진상이다
진상떨다와 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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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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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칼럼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어제 저녁을 먹는데 동료 교수가 ‘진상’에 대해 물어 보았다. “진상떨고 있네, 그 사람 참 진상이네, 허구헌 날 진상 떨고 자빠졌네.”라고 흔히 얘기 하는데 그 진상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필자도 ‘진상스럽다’는 말을 가끔 쓰기도 하였는데, 언제부터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진상’의 진상을 캐기 시작하였다.

최근 신문기사에도 ‘진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방언연구가 김성재 씨에 의하면 신문 기사에까지 등장하는 말이라 언뜻 보면 표준어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번에 말하려는 ‘진상’은 아직 표준어 영역에 들어오지 못한 방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활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흔히 쓴다. “저 사람 참 진상이다.”,  “술 먹고 진상 떠는 저 사람이 누구지?”, “저 진상 손님, 빨리 갔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생활 속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표준어가 아니란다.

그렇다면 표준어 ‘진상’의 뜻은 무엇일까? 진상(進上) : ①‘진귀한 물품이나 지방의 토산물 따위를 임금이나 고관 따위에게 바침’, ②‘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라고 되어 있다. 주로 ②번의 뜻으로 쓰고 있는 것 같으나 제대로 된 용례도 없다 보니 아직은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어사전에서 ‘진상떨다’를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진상’에 관해서 위에 있는 ②번의 의미로 쓸 수 있다고 하고, ‘떨다’에 관해 “①추위 또는 감정으로 몸이 빠르게 흔들리다, ②사로잡혀 정서적으로 심하게 반응하다, ③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흔들다”라고 제1용례가 있으며, 또 다른 것으로 “① 흔들거나 쳐서 떨어지게 하다, ② 덜어 내다, ③몽땅 팔거나 사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진상떨다’라는 말은 일단 표준어가 아님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중류사회에 있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상이다’라는 말은 제대로 된 말일까 생각해 보자. 생활 속에서는 아주 흔히 쓰는 말이다. 위에 있는 예문을 보더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특히 “저 사람 참 진상이다.”라는 말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표현 역시 사전에서는 용납하지 않는다. ‘진상하다’라는 말로 나오는데 그 뜻은 “받들어 올리다”로 쓰이고 있다. 주로 ‘임금에게 진상하다’는 의미로 쓰인 것들이다. 한자로 ‘진상(進上)’이라고 쓴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 참 진상이다.”라고 할 때는 ‘꼴불견(꼴不見 : 겉모양이나 하는 짓이 비위에 거슬리거나 우스워서 차마 볼 수가 없음)’으로 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면 아직은 방언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어느 동네 방언일가 궁금하다. 다시 방언영구가(김성재)의 말을 인용해 본다. 그는 “‘진상’과 ‘진상 떨다’라는 방언을 쓰는 지역은 경북과 충남이다. 경북에서도 청송·의성·예천·봉화 같은 북부지역과, 충남과 접경을 이루는 문경·상주 등에서 널리 쓰인다.

충남에서는 거의 전역에서 쓰는데, 대표적인 지역으로 공주·부여·논산 등지와 대전을 꼽을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경북과 충남 등지에서 주로 쓰이던 말이 서울까지 올라와 출세(?)한 것이다. 하기야 신라시대에는 경주 방언이 표준어였고, 고려시대는 개성 방언이 표준어였으니 경북이나 충남의 말이 표준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웅진(백제)시대에는 충남의 말도 표준어였을 것이다. 조만간 표준에 대열에 오를 것을 기대하지만 아직은 방언임을 알고 바로 써야겠다. ‘진상떨다’나 ‘진상이다’는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방언이다.

충남에 처음 부임했을 때 생각이 난다. 대전사람들은 ‘개갈 안 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 줄 몰랐는데, 자주 듣다 보니 이해할 것 같다. “정말 개갈 안 나는 사람들 많다.” 이 말의 뜻을 아는 독자가 몇 명이나 될까? 대전말도 표준어로 등재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