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낚시
추억의 낚시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20.06.16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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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석회 전 카톨릭대학교 부총장
사진 김석회 전 카톨릭대학교 부총장
사진 김석회 전 카톨릭대학교 부총장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렸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사계절마다 기온이 다르고, 온갖 풍광이 다르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다른 사계절이 새로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삶의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제각기 다른 계절 맛을 볼 수 있어서 계절이라면 모두가 좋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 때는 특히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그 무덥고도 후덥지근한 여름을! 모기하며 각종 잡 벌레들이 달려드는 여름을 특별히도 좋아했던 까닭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름밤의 밤낚시를 죽도록 좋아하고 즐겼으니까. 봄 그리고 가을 낚시도 그런대로 맛이 있지만, 한여름밤에 즐기는 밤낚시야 말로 그 누구도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무더운 여름밤이라지만 여름날 오후에 밤낚시 채비를 하고 낚시하러 떠나는 나의 마음은 동키호테 그 자체다. 밤낚시를 계획하는 날이면 그 며칠 전부터 설레임에 밤잠을 설치는 게 일쑤였다. 밤낚시 준비를 하기 위해서 미리 낚싯대하며 낚싯줄과 낚시 바늘을 챙기노라면,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올 지경으로 나를 황홀경 속에 빠트리곤 했다.

  낚시 바늘을 묶어보는 재미 그것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없을 거다. 그리하여 밤낚시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낚싯 터에 도착 하노라면 내 머리 속에는 벌써 월척이 퍼득인다. 기대가 크다. 저녁무렵 챙겨간 도시락을 펴들고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저녁식사를 할라치면, 그 도시락 맛은 밥맛이 아니라 꿀맛이 되어 내 입 맛을 돋군다. 그때의 그 도시락과 그 입맛이 그리워지니 인생무상 이다.

  그리하여 온갖 낚시 준비를 끝내고 나면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저수지 수면에서는 어느덧 물안개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수면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마치 선녀가 춤을 추는 듯 나의 혼을 뺏아 가기 일쑤다.

  그 무렵 낚시채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찌달린 낚싯줄을 물위에 띄우면 그때부터 내 세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 만이 즐길 수 있는 내 세상이.  그리하여 붕어들과의 한판 싸움이 시작된다. 찌를 수면 위에 수평이 되게 맞추어 놓고 밑밥을 준 뒤 몇 대의 낚싯대를 가지런히 드리어 던져 두고는, 나와 붕어, 그리고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찌 하나가 수면 위로 서서히 솟구쳐 올라온다. 신선이 춤을 추듯 물안개 위로! 때는 이때다. 낚싯대를 잡아채면 휘청이는 낚싯대가 포물선을 긋는다. 붕어와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가슴 조이며 끌어올린 붕어가 몸부림치며 물 위로 떠오를 때엔 그것이 붕어가 아니라 마치 고래가 떠오르는 것 같은 손맛을 느낀다. 죽기 살기로 요동치는 월척이다. 그래서 손맛을 보는 그 재미는 여름밤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손맛 한번 못보고 허탕치는 날이 있다. 어쩌면 그런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세월이 아깝지 않은 것은 여름이 내게 주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의 선물!

  그래서 주말이 되면 또 낚시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면 몇몇 친구들을 꼬득여 친구들과 장곡 저수지로 낚시를 자주 갔다. 지금 생각하니 낚시하던 추억이 내겐 보석 같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친구들과 서로 깊은 정을 나누며 여기저기 낚시터에 가서 겪었던 얘기꺼리가 많아 지금도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리면 옛날 낚시하던 추억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낚시터에서 선의의 경쟁 아닌 경쟁을 하며 낚시를 하는 기분이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더더욱 재미있는 일은 짓궂은 친구가 월척이라도 낚게 되면 은근히 주위 친구들을 약 올리며 붕어를 금방 끌어내지 않고 붕어를 데리고 노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게는 왜 붕어가 달려들지 않나' 하고 붕어를 원망하기도 한다. 친구의 낚시에 붕어가 잘 잡히고 나는 못 잡고 있노라면 부럽기도 하고 약도 오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야 말로 내 인생의 둘도 없는 소중한 동반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낚시를 즐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인생 막바지에 다다르고 보니 그런 재미도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이제는 추억으로 돌릴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