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의 방황과 향기
은사님의 방황과 향기
  • 김경숙
  • 승인 2021.04.20 17: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은사님의 방황과 향기**

                   

주종순 수필가
주종순 수필가

 

 

60이 넘은 나에게는 중학교 때 은사님께서 대전에 살고 계시다.

은사님은 거의 6개월 전쯤 사모님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시고, 매일 외로움에 불면증이 너무 심하시고, 우울증 때문에 괴로우셔서 몸부림치신다.

나는 우리 은사님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은사님의 심정과 괴로워하시는 증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모르는 체 하곤 관심을 갖지 않은 척 속없이 글만 신경 쓰는 것처럼 행동했다. 은사님 심정은 아예 나의 일도 아닌 양, 계속 연기하며 엉뚱한 방향에서 딴청만 부리다가 은사님을 자주 만나 봬도 얼굴이 우울해 보이고, 눈은 밝아 보이지도 않고, 너무 피로에 지쳐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겨주신 ‘반룡인수 한의원 한태영 박사님’께 은사님을 반 강제로 모시고 가서 불면 증세를 털어놓고 “제발 고쳐 주십사” 부탁드렸는데, 다행히도 약이 1000프로 효과발휘(效果發揮)를 한 것이다.

 

난 너무 좋았다. 그래도 나름 걱정했건만, 약 드시고 첫날부터 효력이 있어 행복해하시고 전화 음성도 쩌렁쩌렁 하셨다. 역시 마음의 병은 마음을 다잡아야 해결되는 모양이다.

 

 오늘도 전화를 하니 정신과 치료를 받으셨단다. 사모님을 못 잊어 우울해하시다가 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는 제자를 찾아가셔서 “우울증과 고독증 때문에 살 수 없으니 이놈들 체포해서 교도소에 보내달라.”고 하셨더니 제자 경찰관이 웃으면서 경찰차로 정신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셨단다.

우리 은사님이 얼마나 우울감과 외로움을 못 이기셔서 그렇게까지 엉뚱한 일을 하신 건지. 참으로 나같이 당돌한 제자가 뭘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을까!

 

 정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것인지. 제자를 만나도 항상 하시는 말씀 “나는 아내가 치매라서 외출할 때는 언제나 기저귀. 바지. 물티슈 배낭을 메고 나간다.”. “아내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대소변 보고, 욕할 때가 많았지만 아내와 함께한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나도 은사님 말씀에 공감(共感)이 느껴진다. 우리는 평범하게 남들 모두 느끼는 비슷한 생활을 영위할 땐 잘 못 느낀다. 곤경에 처했다가 한숨 쉴 수 있을 때서야 느끼는 감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인생에 있어 제일 힘든 시간은 부부간의 사별, 그리고 이혼, 그다음 재혼 .... 결국 살아가는데 제일 힘드는 일의 80프로가 부부 문제라는 것이다. 나의 은사님은 사모님을 그렇게 사랑하셨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래도 글을 쓰시는 것은 천직(天職) 인가보다. 그 시간만큼은 우울해 보이지도,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 매서운 카리스마로 정진하시니 정말로 다행이다. 일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하면 그래도 여자보다 남자들은 대부분 일이 먼저라고 하니까.

 은사님의 인생철학은 처음 볼 때보다 자주 만나 뵙다보니 정말 일반인보다 많은 매력의 향기가 있다. 내가 깜짝 놀란 일은 은사님이 쓰신 모자가 구제 의류점에서 싼 것을 사서 쓰셨단다. 그런데도 모자 장사 35년 베태랑인 내 눈에도 잘 어울려 보였고, 점퍼도 신발도 진짜로 싼 것만 골라서 착용하시는데도 멋있게 보이셨고, 사모님께서 타고 다니시던 15년이 넘은 빨간색 모닝을 타고 다니시면서도 당당하게 보이셨다.

 멋쟁이시다. 워낙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고, 자수성가로 가정을 일구시고, 어려운 시절 겪으시며, 60년 넘게 제자를 수없이 배출하셨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도 필력가로 공인이 되셨는데도 언제나 겸손하시고 인자하셔서 못난 제자에게도 잘못한다는 말씀을 일체 안 하시는 우리 은사님 아주 멋지시다.

 

사람이 된 사람은 본인에게는 인색하고 절약하며, 어려운 사람에게는 후하다는데 나는 그런 모습을 은사님에게서도 많이 느꼈다.

 

⯈은사님께!

은사님 이젠 일 좀 줄이세요. 뒤늦게 글을 배우고 싶어 전국에서 제자들이 줄을 섰는데, 은사님이 아직도 하실 일이 그렇게도 많은데 좀 더 건강하셔야 될 것 같아요. 스승님 쳐다보며 글 쓰는 제자들을 더 많이 보살피려면 정말 어려우시겠지만 꿋꿋이 뚜벅뚜벅 걸어가셔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젠 판토피(순간 진정작용) 드시고 전화 받지 마시구요. 제가 말하는 법을 좀 고쳐 볼게요. 항상 죄송하고 감사드려요. 선생님께서 유물로 물려주신 14권 문장(文章) 책과 은사님께서 가보로 아끼시던 구 지폐(紙幣)와 패스포드를 선물로 받아서 영광입니다.

잘 간직할 게요.

                    2021,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