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재 칼럼] 1947년 5월7일 대전역에서 충남지관을 세운지 74주년이 되었다.
[이길재 칼럼] 1947년 5월7일 대전역에서 충남지관을 세운지 74주년이 되었다.
  • 김경숙 기자
  • 승인 2021.05.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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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 관장님의 무덕관 창립 뜻을 받들어 대전에서 무덕관을 세계에 널리 알려 달라’
이길재 國技태권도 무덕관 3대사범
이길재 무덕관 3대사범

세월이 참으로 많이 지났다. 내가 태권도의 원류인 당수(수박) 임명순 사범님으로 사사 받은지도 70여년이 지나 백발의 노 사범이 되었다.

청소년기 대전역 소제동 운동장에서 철도 보급창고에서 당수를 배우고 황기 무덕관 창시 관장님으로부터 사범을 임명 받아 평생을 태권도와 함께 살아왔다.그리고 1957년 당수도 무덕관 충남 도본관장을 맡아 구세군 교회앞 2층에 도장을 내고 제자를 양성 했다. 도본관에서 수련한 대표적인 인물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롯하여 이응인, 김흥수, 정찬모, 박상도, 김기복, 이규용, 유근호, 한명덕, 오노균 등 수많은 사범들을 배출했다.

황기 관장님께서는 1920년대 택견과 전통무예 수박을 배우시고 1930년대는 국술을 만주에서 양선생 한테 배웠다고 말씀 하셨다. 우리의 고유 무예 형태는 고구려 안악고분이나 각저총에 있는 격투기와 같은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중국의 문화에 예속되지 않은 고구려 고유의 전통무술이 1,600여년 이전부터 있어 왔음을 보여 준다. 바로 이 시대에 널리 성행하여 왔던 무술이 `수박(手搏)'인데 충청도 은진(현재 논산)‘작지마을’에서도 매년 백중날 여산사람들과 편을 나누어 구한말까지 ‘수박희’를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광복 전후 우리나라 무술관은 무덕관과 청도관 등 5대관이 쌍벽을 이뤘다. 전국에 지관을 두어 관원들을 수련 시켰다. 황기(黃琦)관장님께서는 1930년대 만주에서 양선생으로부터 배운 ‘국술’이 정조대왕 명으로 발간한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이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수박도'를 체계화 하시어 오늘날 태권도의 원형이 되었다. 즉 무예도보통지가 1790년 정조14년에 간행되었으니 면면히 이어져 황기 관장님의 무예입문 94년의 역사속에 감히 태권도의 창시자로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 한다.

1960년 (사)수박도협회 창립 후에는 고유한 십단금형과 우리나라 특유의 무예형인 칠성형과 화선형이 복원되고 전통 수련법을 전승케 된 것도 이 때이다. 5·16군사혁명 이후 최홍희육군소장이 이끄는 무예인들이 태권도로 규합되면서부터 수박도는 쇠퇴를 거듭하게 된다. 인위적인 통합계획에 따라 무덕관은 분열되고 끝까지 도장을 지키던 사범들도 해외로 떠났다.

이에 황기관장님도 미국으로 건너가 본부를 차리고 전 세계에 `수박도'를 전파하게 된다. 현재 세계무덕관연맹을 중심으로 유럽 등 30개국에 지부가 설치돼 있고 5만여 유단자와 30만명의 수련생들이 있다. 이들은 10년을 주기로 세계무덕관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1945년 용산 교통부에 당수도부를 설치해 무덕관을 개관한지 76주년이 되는 해이고 2대 임명순사범님께서 1947년 5월7일 대전역에서 충남지관을 세운지 74주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무덕관 계승회 정찬모회장과 국기태권도 포럼 김기복 회장이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니 기쁘기 한량 없다.  대를 이어 무덕관을 이끌고 있는 4대 김흥수 사범과 이규용사범, 5대오노균 교수와 6대 청년 지도자인 성열우사범 등의 노고를 높게 치하 한다. 앞으로 대전역을 중심으로 대전 동구가 세계 무덕관 중심이 되길 성원 한다. 무주 태권도원을 방문하는 세계각국의 태권도인들이 대전역에서 내려 무덕관의 ‘대련중심’인 정통 태권도를 배우고 중앙시장도, 송시열 사당도, 식장산도, 대청댐도 관광하면서 지역 발전에 공헌하는 큰 성과를 올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