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월 4일 봄을 알리는 입춘입니다. 立春大吉(입춘대길) 하시고 建陽多慶(건양다경) 謹賀新年(근하신년) 설을 맞이하여 친지 가족과 행복하고 즐거운 설 명절되세요.
설날은 한 해를 시작하는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입니다.
왜 우리는 설을 맞은 날을 언제 부터인가 신정. 구정으로 나눠졌을 까요?
우리민족은 오래전부터 음력을 사용했는데, 즉 달을 보고 24절기로 나누어서 절기대로 자연에 맞는 삶을 살고 농경 사회에서는 농사 시기에 맞는 농법으로 농업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실제 음력 설날을 쇠는 것을 법으로 규제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적으로 '양력 1월1일'을 설날로 여겨야만 했습니다.
물론 전통을 지킨 조상님(백성)들이 계셨기에 오늘날 설날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일본과 서양은 양력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즉 태양력에 따른 계절의 변화로 생활을 했는데, 대한 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본은 우리에게 신정을 강요 했습니다.
1945년 우리 대한민국은 독립을 했지만 당시 지배층인 친일파들은 한심하게도 일본 눈치를 봤습니다.
일본의 양력첫날을 신정 우리 고유의 음력설을 구정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것은 옛날 것이고 일본 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말로 그들의 우월성을 말 하려고 신정 구정으로 했던 겁니다.
일본치하에서도 설을 강제 했는데 즉(백성)은 설과 추석을 우선하여 공무원이 외 백성은 눈치를 보지 않고 명절을 맞아 무조건 고향으로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기에 이렇게 신정 구정으로 국민에게 모멸감을 주었던 것입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설날'은 여전히 '양력 1월1일'이었습니다. 양력 1월1일만 설날로 보내야 한다는 논리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주요 교역국인 외국이 양력을 쇠는데 우리만 양력·음력 설날 두 번을 쉬는 '이중과세'(二重過歲)를 하면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정부는 양력 설날을 강요하고 음력 설날을 탄압한 대표적 정부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이 돼서야 '음력 1월1일'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 지위를 얻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구정' 휴일은 당일 하루에 불과했습니다.
노태우 정권기인 1989년이 돼서야 '구정'은 '설날'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고종황제의 결단 이후 93년 만에 원래의 이름을 찾은 것 입니다.
휴일 기간도 3일(설날 당일 및 전·후일)로 늘었습니다. 2014년에는 대체휴일제도가 도입돼 설 연휴는 최소 3일 이상이라는 상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상식이 자리 잡는 것도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음력 설날이 위헌이라는 주장까지도 있었으니까요. 실제 헌법재판소에 "음력 설날 제도는 위헌이다"라는 선언을 내려달라는 신청도 있었습니다. 이런 우여 곡절 속에 고유 명절 설을 찾은 국민은 구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것 입니다. 설을 맞는 대한민국 백성은 조상님들이 눈물겹도록 지켜낸 설은 민족 고유의 명절인 것 입니다.
설을 맞은 국민은 이제 연휴에 지친 몸도 쉬면서 민속적인 풍속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설은 친지 가족과 조상님을 돌아보고 가문의 전통을 찾아 민속적 풍속을 이어가며 배워야 하겠습니다.
설을 맞아 가정마다 만복이 가득하시고 직장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이 오랜 만에 반갑게 만나 행복하고 즐거운 설 명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