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春窮期. 麥嶺期)의 추억
보릿고개(春窮期. 麥嶺期)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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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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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균 / 병역명문가 수필가

이 말은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시절로 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춘궁기에 식구들은 많고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물로 배를 채우거나 채소와 약간의 쌀을 넣어 만든 멀건 죽으로 겨우 버티던 때를 말한다.

호소력이 짙은 가수 진성이 부른 보릿고개라는 노래에 그 시절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길/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중간 생략)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통곡이었소.(2)

 

예전에,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의 보릿고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1950~1960년대 식량이 부족해 그만큼 보리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기가 힘들었던 가난의 설움을 눈물로 삼켰던 시절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식량 수탈과 6.25 전쟁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은 극심한 굶주림 속에 살아야 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추수 때 거둔 농작물 가운데 소작료··이자·세금 등 여러 종류의 비용을 뗀 다음, 남은 식량을 가지고 초여름 보리수확 때까지 견뎌야 했던 것이다. 이때는 높은 고리(高利)로 쌀이나 보리쌀을 부잣집에서 빌리거나, 일부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여 가족들을 부양했다. 벼나 잡곡 등의 수확이 끝난 후 늦가을에 씨를 뿌려 파종을 하고 이듬해인 유월이 오면 누렇게 익은 곡식을 수확해서 거두어 창고에 저장해 두어 먹다 보면 일 년 먹을 양식이 바닥이 났다. 파종한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아 식구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해 끼니를 거르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인 보릿고개 시절에는 이른 봄부터 모든 식량이 떨어져 극히 일부의 가정을 제외하고는 잘 닦인 보리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대부분의 가난한 집안은 한 번 정도만 보리 껍질을 벗겨 거친 보리밥을 그대로 먹어야 했다. 또한, 등겨가 들어간 등겨 떡과 밀가루 반죽에 쑥이 들어간 쓱개떡, 수제비와 칼국수 등으로 주린 배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가까운 친척집에 제삿날이나 돼야 쌀밥과 고깃국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는데,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한참 잠을 자다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며 일어나 제삿밥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수북이 쌓아올린 고봉밥과 귀한 고깃국을 맛나게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차츰 나아지기 시작해 1970년대에 들어서 활화산처럼 번진 새마을 운동과 중동 특수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함께 농민들을 위한 식량 증산운동(다수확 벼 품종 개발)의 소득도 늘어나고, 생활환경도 나아짐에 따라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었다. 요즘은 생활도 많이 나아져 먹을거리가 풍성해, TV에서는 방송국마다 앞 다퉈 음식에 대한 방송이 넘쳐 난다. 어느새 하얀 쌀밥에 인스턴트식품, 육류의 과다 섭취까지 겹쳐 당뇨와 과체중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이고 보니 보릿고개란 말은 말 그대로 전설 같은 옛말이 돼 버렸다. 지금은 그 시절에 먹던 음식이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음식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진 김용복 극작가
사진 김용복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