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과 해탈, 기하와 도형
열반과 해탈, 기하와 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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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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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필자는 어려서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항상 사전을 벗삼아 모르는 단어는 찾아보고 한자로 써 보면서 즐거워했다.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단어의 뜻을 모르면 며칠이고 뜻이 풀릴 때까지 고민을 하였다. 

요즘은 <격암유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을 한다. 그리고 <격암유록>은 원문에 후세인(後世人)이 가필한 것이 많은 작품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1509년 생인 저자 남사고의 책에 <이사야>나 <로마서>의 글이 들어 있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원래 남사고 선생이 쓴 글에 모 종교인이 자기들의 교주를 신성시하기 위해서 <격암류록>을 필사한 것처럼 위장해서 쓴 책이다. 그러므로 그 책은 가필한 것부터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50대 초반 쯤 되었을 때였다. 친구 중에 스님이 있어서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불경을 읽을 때 어떤 것은 번역해서 읽고, 어떤 글은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읽고, 또 어떤 것은 한문본을 읽느냐고 물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돌아왔다. 

“이 18놈아! 그런 것은 학승에게 묻지 왜 나한테 묻고 지랄이야!”그래서 그렇게 한 방 얻어맞고 끝났다. 어떤 것은 “수리수리 마수리”, 또 어떤 것은 “관자재보살 지장보살” 하는데, 한문은 이해할 수 있지만 범어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흔히 열반에 들었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느 경지에 이르렀거나, 혹은 죽음으로 육신의 껍질을 벗어났을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열반(涅槃)을 중국인 제자에게 중국어로 읽어보라고 했더니 ‘nie pan’이라고 했다. ‘니에’는 상성이고‘반’은 입성이다. 필자가 평음을 표기할 줄 몰라서 이렇게 쓴다. 한국어로 발음하면 ‘니어반’에 가깝다. 

‘니어반’은 ‘nirvana’를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이는 ‘번뇌의 불을 확 불어서 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동국대 김재권 교수의 풀이) 결국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쓰듯이 산스크리트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한자로 해석한 것이 ‘해탈(解脫)’이 아닌가 한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 해탈과 열반을 다르게 풀이하는 학자도 많다. 

김재권 교수의 견해에 의하면 “해탈과 열반의 개념은 서로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데, 수행론적인 맥락에서 볼 때 해탈의 의미는 비교적 폭넓게 세간도와 출세간도에 걸쳐 사용되는 비해 열반은 10가지 족쇄 중 무명까지 완전히 제거해야하는 점에서 출세간도에 한정되어 매우 협소하게 쓰이는 점에서 그 차이를 드러낸다고 본다.(출처:법보신문)”고 하였다. 

필자의 견해로 볼 때 깊이는 다를지라도 큰 의미는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는 음을 그대로 쓴 것이고 하나는 뜻을 풀어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가차문자로 인해서 헷갈릴 때가 많다.

 ‘커피’를 ‘가배’라 쓰고, ‘베토벤’을 ‘배도봉’이라고 쓴다. 이태리(伊太利), 아메리카(美利堅 -> 美國) 등이 모두 이런 류의 가차문자다. 그 중 아주 헷갈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하학’이다. 기하는 한자로 ‘幾何學’이라고 쓴다. 

철학(哲學)이라는 단어도 참으로 어려운 의미를 담고 있는데, 기하학은 글자만으로 그 뜻을 알기는 더욱 어렵다.논리학(論理學)같은 것은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영문학(英文學)이나 국문학(國文學)은 바로 그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하학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몇 기(幾)에 어찌 하(何)’자를 쓰니 그 의미는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글자 그대로 풀면 ‘뭔학문’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기하’는 영문 ‘geometry’에서 나왔다. 

‘지오메트리’를 중국식으로 표기할 때 ‘jie’라고 한 것을 중국어로 음사하면 ‘기하(幾何)’가 된다. 보통 기하학이라고 하면 ‘도형 및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음만 그대로 쓴 것이지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다.

외국어가 중국이나 일본을 건너오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남포(lamp), 미싱(machine), 마징가 Z(machiner Z) 등이 일본을 거쳐 오면서 이상하게 변한 단어군이고, 열반과 기하는 중국을 건너오면서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세계는 하루 생활권으로 변하고 있다. 언어는 더욱 빠르게 변한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지, 끝까지 우리글만을 고집해야 하는지는 독자의 몫이다. 다만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말하는 것과 알지도 못하면서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 민족의 미래가 언어에 있음을 명심하자.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