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칼럼] 하나의 사건,두개의 시선
[최태호칼럼] 하나의 사건,두개의 시선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2.24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부대학교 최태호 교수

 

대한민국은 법치주의국가다.

법치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함을 말한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중세까지 통치자의 말이 법이고 판결이었기에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법률이 존재한다고 해도, 같은 법률을 해석하는 방법이 사안에 따라 달라졌다. 현대에 있어서 법치주의의 근원적 이상은 통치자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닌 합리적이고 공공적인 규칙에 의한 지배를 통해 공정한 사회협동의 체계를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사회 내 특정 세력이 다른 세력들을 압도할 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법의 지배는 부각되고 정치행위 주체들은 법에 의거해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

사상적 연혁에 따라 법의 지배(Rule of Law)나 법치국가(Rechtsstaat) 원리로도 불리고 있다. 삼권분립의 통치원리로서 권력분립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국가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법률의 적용을 보장하는 재판제도를 가짐으로써 인권보장의 목적을 함께 달성하려는 제도가 법치주의다. 그런데 지금 모든 사람에게 인권보장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법치(法治)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법치주의는 통치에 대한 원칙이다. 따라서 국민들이 권력을 가진 정부에 대항하여 방패와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법치주의이며 법치주의의 원류도 정부에 대하여 시민들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기제가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영국의 대헌장에서 절대권력자인 왕의 의지도 법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치주의의 장을 열었다. 이것은 영국에서 "누구도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다. 통치자도 법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치주의의 일반원리로 자리 잡았다. 법치주의의 의의는 피지배자뿐 아니라 지배자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함을 명시한 데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축소·은폐하려 시도한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3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3차 공판에 출석했다. 불평등한 특권과 권력을 누려 국정을 농단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지게 한 것은 가장 큰 범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검찰은 기소주의의 과도한 해석이다. 또한 정치적 목적으로 어느 대상을 구속시키기 위해 표적수사하는 보수정권의 관행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지난 한때 검찰을 권력의 시녀라고 말하였지만 요즘같이 대통령이 검찰의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촛불혁명의 주인인 국민들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만인평등 사상이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는 주장은 여기서 도출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므로 아무도 타인을 억압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인 인권과 인격에서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본다. 모든 개인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진 절대적 존재로서 완전히 평등하다. 모든 개인은 신분, 인종, 성, 종교, 재산 등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게 그 자체로 절대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그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분명하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로 되어있다.


자유주의 이전의 전근대사회에서는 국가, 민족, 가문과 같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혹은 종교나 이념을 위해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당연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단의 강요에 의하여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만인평등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지 않았던가. 법은 만인위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하거나 불공평하게 공권력피해자가 생기게 될 것이다. 공권력피해자란 표적수사, 불합리한 재판구조 등 틈새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비극이다. 아무리 미워도, 모든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졌다고 할지라도 법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검찰은 우병우, 정유라의 계속되는 구속영장청구는 만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운영이 아니라면 검찰의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검사는 직위는 공정한 심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 이를 함부로 남용하면 그로 인한 피해자는 치명적인 피해를 당하게 된다. 거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피해까지 포함되어 정의감을 상실케 하고 사회 불신을 야기 시킨다. 법치는 정의의 원칙에 그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정의는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들이 외쳐야 하는 것 아닌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들의 죄를 묻기 위해 시작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연합국 측의 국제 군사 재판이다.

당시 피고들은 침략 전쟁 등의 공모와 참가, 계획, 실행과 전쟁 범죄, 비인도적 범죄(유대인 학살) 등의 이유로 기소되었지만 공정하지 않았다는 여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받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수자와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배려’가 지나쳐서 ‘우대’로 변질되어 또 다른 ‘역차별’을 낳는 현상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 건물에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아주 간단한 진리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문구를 건물에 새겨 놓은 이유를 되새겨보는 오늘이다.


정권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진다면 분명 문제는 법을 운용하는 인간에게 있다.

 

사진 중부대학교 최태호 교수
사진 중부대학교 최태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