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덕주의 문화산책] 국역 흑산일록(黑山日錄)을 읽고
[제갈덕주의 문화산책] 국역 흑산일록(黑山日錄)을 읽고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3.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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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갈덕주 경북대 외래교수/유네스코대구협회 이사

 올해는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00년 전 전국 방방곡곡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그날의 함성처럼 올 한 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만세소리가 동리동리마다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새로운 100주년에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선도한 문화강국으로 기억되기를 바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칼럼의 첫 장을 최근에 국역된 『흑산일록』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한다.

장석영 선생이 짓고, 정우락(경북대 국문과) 교수가 국역한 이 책에는 파리장서운동에 숨겨진 뒷이야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구감옥 127일, 그 고난의 기록’이라는 부제로 국역된 이 책에는 번역문과 발굴 경위에 얽힌 이야기, 원문 및 영인본이 수록되어 있다.

장석영 선생은 경북 칠곡 출신 독립운동가로서 칠곡 지방의 국채보상운동과 파리장서운동 그리고 성주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투옥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대표적인 유림 가운데 한 명이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침탈되자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청참오적소」를 올렸으며, 1907년에는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발생하자 칠곡 지방의 국채보상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9년에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 김창숙 등과 함께 「파리장서」를 작성하는 한편, 유림 및 기독교단체와 연합하여 성주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에 1980년에 와서 그 공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그런데 한때 장석영 선생이 작성한 「파리장서」의 원문이 발견되지 않아 학계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대구지방법원 판결문 등에 선생이 작성한 원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지만,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09년 6월에 대구 MBC에서 파리장서운동 90주년을 맞아 기념 특집 프로그램으로 3부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우연히 문중에 소장되어 있던 원문이 발견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계에는 선생이 작성한 「파리장서」가 전해지지 않는다고 보고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대구 MBC의 의뢰를 받은 선생의 현손 장세민 씨 등이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선문별집』 4책을 들고 정우락 교수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에 검토 요청을 받은 정우락 교수가 「기미 흑산일록」에 수록된 「파리장서」 초안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그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이 발견되면서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많은 진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이런 숨은 자료들이 더 많이 발견되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밝히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흑산일록』의 명장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심문 과정에서 재판관이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죄를 추궁하자 이에 대해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재판소는 송사를 결정하는 곳이니, 내가 송사하는 이치로 말을 하겠소. 지금 어떤 사람이 남의 토지를 빼앗았다고 합시다. 빼앗긴 사람이 토지를 다시 찾으려고 한다면, 빼앗은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이 도적이오? 찾으려는 사람과 빼앗은 사람이 재판소에 와서 송사를 한다면, 재판관은 장차 누구를 도적이라 하겠소?” 기회가 된다면 삼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뜻깊은 책 한 권을 읽어보길 바란다.

꼬장꼬장한 선비정신과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의 비분강개가 저절로 느껴지는 『국역 흑산일록』. 

 

사진 제갈덕주 경북대 교수
사진 제갈덕주 경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