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랑글짱들]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문학사랑글짱들]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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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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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성거사

 

    얼마 전 모 공공기관에서 경력사원 응모자 서류심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흔쾌히 응했다. 한 시간 남짓 응모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심사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 이제야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화의 바람이 태동하였으니 이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일단 시작하면 흐름은 이어진다.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각 응시자들이 작성해온 입사지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심사해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그 날의 과제였다. 모두 4명이 심사를 진행한 가운데 1명은 내부 임원이었고 나머지 3명은 외부에서 의뢰를 받고 기관을 방문한 이들이었다. 심사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요원도 별도로 1명 배치됐다. 서류심사를 하는 동안 공정한 심사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어떤 행동이나 발언도 삼가고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입사지원서 양식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공공기관부터 입사지원서 양식에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불필요한 편견이나 오해, 차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모든 요인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접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성별, 나이, 학벌, 외모, 출생지, 병력 등등을 기록해야 하는 공간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처음에는 개인의 신상에 대한 정보가 없는 서류가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모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갖고 차분히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변화는 사진을 부착하는 난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어디랄 것 없이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서류에는 사진을 부착하는 일이 당연시 되었다. 사진을 없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편견을 갖는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사회는 그동안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아주 잘못된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느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느니 하는 말을 앞세워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주민번호 표기도 사라졌다. 주민번호가 사라졌다는 것은 출생년도와 성별을 식별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입사지원서에 굳이 나이가 얼마나 되고, 성별이 무엇인지를 표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나이나 성별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없게 됐다는 것도 분명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출신학교를 표기하는 난도 입사지원서에서 사라졌다. 오랜 세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가 학벌에 의한 사람 차별이었다. 출신학교나 학벌을 보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잘못된 관행의 뿌리는 깊다. 이제야 그 차별이 사라질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시작된 것이다. 이전의 원서에 본교인지, 지방캠퍼스인지, 주간인지, 야간인지까지 기록하게 하며 차별을 위한 단초를 찾으려 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사회의 변화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제 학벌 지상주의가 자취를 감출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입사지원서는 집안의 재산정도를 표기하도록 하는가 하면 부모와 형제까지 가족사항을 기록하게 했다. 심지어 각 가족의 생년월일과 현 직업, 학력사항까지 표기하도록 했다. 본적을 표기하도록 해 그 사람이 어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는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을 차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했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구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할지 몰라도 변화하는 새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철저한 차별의 씨앗이다.

  

   지원자가 해당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그가 제출하는 자격증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외모도, 성별도, 나이도, 학벌도 업무수행능력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 그동안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 요소들이 편견과 차별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이 민간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돼야 한다. 그래야 누구라도 외모, 학벌, 성별, 나이 등을 이유로 필요 없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세상이 정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