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有備無患)의 교토삼굴(狡兔三窟)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교토삼굴(狡兔三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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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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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염재균 병역명문가

영리한 토끼는 굴을 셋이나 파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이다. 

힘이 센 맹수로부터 힘이 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리 피난처를 만들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근심 없이 편히 잠잘 수 있을 만큼의 안심 상황이 되도록 미리 대비책을 세워 놓는 철저한 준비성으로 재난에 대비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교토삼굴’(狡免三窟)은 고사성어(지도교수: 장상현)에서 배운 내용이다.    

전국시대, 제나라 때 맹상군과 풍환(馮驩)과의 일화에서 나오는 이 말은 사기 맹상군 열전(史記 孟嘗君 列傳)에 사건의 유래가 들어 있다. 살펴보자.

『제나라 재상 맹상군은 집에다 3천 명이나 되는 식객(食客)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식객들은 저마다 재주 또는 학식이 뛰어나다고 자부하여 주인의 눈에 들어 출세해 볼까 하는 자들이었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풍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맹상군이 식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설(薛)에 가서 빌려준 돈을 징수(徵收)해 오겠는가?” 오로지 풍환 혼자 나서서 자기가 그 임무를 맡겠다고 청했다. 맹상군은 평소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지원자가 한 사람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 풍환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출발에 즈음하여 풍환이 맹상군에게 물었다.

“징수가 끝나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사 올까요?” “무엇이든 자네 마음대로 사 오게. 단, 우리 집에 없는 것이어야 하네.” 설에 도착한 풍환은 채무자들을 불러 모아 차용증(借用證)을 하나하나 본 다음 풍환은 채무자들에게 말했다.

“맹상군께서는 여러분의 성심성의를 오로지 고맙게 생각하시고는 나더러 채무를 면제(免除)해 주라고 하셨소이다.” 그리고는 받은 이자를 일일이 돌려주고, 차용증 더미에다 불을 질렀다. 

모든 차용증은 삽시간에 재(災)가 되었고, 채무자들은 기뻐 날뛰며 ‘맹상군 만세!’를 외쳤다. 이윽고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뭘 사왔는가?”

“나리의 저택(邸宅)에는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져 있으나, 다만 한 가지 의(義)가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걸 사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풍환은 차용증을 모두 불살라 버림으로써 의를 사 왔다고 태연히 말했다. 맹상군은 기가 막히고 화도 났으나, 자기가 한 말이 있으므로 나무랄 수가 없어 속으로만 ‘이런 미친 놈!’ 해 버렸다.

일 년 후, 맹상군은 민왕(泯王)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재상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많던 식객들은 맹상군의 몰락(沒落)을 보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풍환만은 맹상군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더러 영지(領地)인 설로 가서 훗날을 도모하라고 권했다. 

맹상군은 가산을 정리해 설(薛)로 향했다. 설에 도착한 맹상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지의 백성들이 몰려나와 환영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그대가 의(義)를 샀다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겠네.” 맹상군이 고마워하며 칭찬하자, 풍환이 말했다.

“교활한 토끼는 굴이 세 개(狡免三窟)나 있기 때문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주군께서는 아직 하나밖에 준비되지 않았으니 안심할 수 없습니다. 제가 나머지 굴 두 개를 마련해 드리지요.” 그런 다음 풍환은 위나라로 가서 혜왕(慧王)을 꼬드겼다. “지금 제나라 대신 맹상군은 임금에게 쫓겨나 국외에 있습니다. 맹상군은 재능 있고 덕이 높은 분입니다. 그를 등용하는 나라는 반드시 강성해질 것입니다.”  

혜왕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사신더러 수레 1백 대와 황금 1천근을 갖고 설로 가서 맹상군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민왕은 무척 놀랐으며,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그는 즉시 태자의 스승에게 황금 1천근과 화려하게 장식한 수레, 자신의 보검, 잘못을 사과하는 문서를 가지고 설로 가서 맹상군을 데리고 오도록 했다. 맹상군은 재상 일을 보겠다고 하면서, 풍환의 조언을 따라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제사 기물들을 설에도 얼마간 나눠주어 종묘(宗廟)를 세우게 해 달라고 했다. 민왕은 그 요구를 즉시 들어주었다. 풍환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 이것으로 주군께서는 굴 세 개를 마련하셨습니다. 이제는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高枕無憂) 주무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수십 년 동안 아무런 위협이나 화액을 당하지 않고 순조롭게 제나라 재상을 지냈다.』  

이 고사성어가 주는 교훈은 어떠한 일(정책)을 추진할 때 사전에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하여 미리 대비하면 걱정이 없거나 피해가 줄어들며,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책을 강구한다면 엄청난 희생자를 유발시킨 ‘세월호’와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될 것에 대비(對備)하여 꼼꼼하게 준비하여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는 근심할 것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가 항상 필요하며 또한, 타고난 운명은 편안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亡戰必危) 온 세상이 비록 편안하지만 전쟁을 잊고 있으면 반드시 위험이 온다는 말로 당(唐)나라 때 백거이(白居易)의 의병책(義兵策)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유비무환의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고 당파싸움만 일삼아 남의 나라에게 당한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치욕(恥辱)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 당시 군주는 태평시대에 웬 양병. 군비확충이냐며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간신들의 말에 솔깃하여 아무런 대비책도 세워놓지 않았던 것이다. 

침략을 당하자 백성들을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기에 급급한 위정자라니 포청천의 작두에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아직도 인근나라인 일본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한일합방 등 한반도 지배야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독도는 자기라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문제도 부정하고 있다. 반성과 사과할 줄 모르는 철면피(鐵面皮)의 나라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국제외교를 더욱더 강화하면서 안으로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분열과 대립보다는 대화와 타협 그리고 배려와 양보를 통해 국력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미국, 중국,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과 북한과의 사이에 있는 우리는 ‘교토삼굴’의 교훈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굴욕적인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 김용복 극작가
사진 김용복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