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계가 좋다
나는 영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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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0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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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부대학교 최태호 교수

 

나이 먹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농담 중에 “나는 영계가 좋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나이 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요즘의 추세는 연하남(연하녀)를 추구하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연하남이나 연하녀를 일컬어 영계라고 하는 표현을 쓴다. 영계의 상대어로 ‘노계’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영어로 young의 상대어로 한자의 老(늙을 로)를 쓰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다. 언제부터 영계라는 말이 이렇게 유행처럼 사용되었나 모르겠다.


우선 영계(young鷄)라는 말이 옳지 않다. 원래는 영계가 아니라 ‘연계(軟鷄)’였다. 지금은 영계가 표준어가 되어 “병아리보다 조금 큰 어린 닭”이란 뜻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어려서 육질이 부드러운 닭’을 의미하였다.

역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영어의 영향으로 영계가 표준어로 되었다. 연계(軟鷄)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영계의 원래 말’이라고 되어 있다. 결국 본래의 말이 사라지고 영어와 한자어가 합성된 신조어가 표준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영계에 상대어는 올드계(old鷄)가 되어야 할 것인데 그것도 아니고 노계(老鷄)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영어와 한자어를 두루 잘 사용하는 스마트(?)한 한국인이라 그런 것인가? 참으로 편한 언어생활을 하는 민족이다. 명사는 두 글자로 된 것이 많다. 우리는 한 글자로 된 단어는 굳이 두 글자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人間)을 보더라도 人(인)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인간(人間)이라고 두 글자로 만든다. 몇 개의 예를 더 보자. 의자(倚子), 액자(額子), 사자(獅子) 등과 같이 ‘자(子)’를 더 넣어서 두 글자의 명사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올드계보다는 ‘노계’가 부르기 편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언어도 변한다. 언어는 사회성이 강해서 언중들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어로 굳어지기도 한다. 영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다가 우리말이 국적 없는 단어들로 가득 찰까 두렵다.

황소라는 단어도 그렇다. 사전에 의하면 ‘큰 수소’, 혹은 ‘미련하거나 기운이 세거나 많이 먹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은 황소(黃소)라고 생각한다. ‘누렁이’(누런 소)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소는 거의 다 누렁이다.(참고로 얼룩소는 순수 한국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런 암소도 황소라고 해야 하는데 왜 굳이 수소(♂)만을 황소라고 할까 의문이 갈 것이다. 이 또한 답은 간단하다.

원래는 고어(古語)로 ‘한쇼(大牛)’였다. 암소보다 크기가 훨씬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한쇼(한소)라고 일컬었는데, 한자의 세력이 한글을 넘어서다 보니 ‘ᄒᆞᆫ’이 ‘황(黃)’으로 변질되었다. 순한글이 한자의 세력에 밀려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한소를 황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커다랗고 힘이 센 소가 누렁이로 변질된 것이다. ‘한’이란 순우리말로 ‘크다. 유일하다, 넓다’ 등의 의미가 있다. ‘한길’(=큰길, 넓은 길)을 생각하면 된다.

요즘에는 한길보다는 ‘행길’이라고 많이 발음한다. 이 또한 ‘신작로’라는 한자에 밀리게 되었고, 현대사회에서는 포장도로가 많아서 신작로나 한길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를 일컬어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한길이라는 단어는 이제 늙어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순수라고 좋은 우리말 한소도 사라지고 한길도 사라져가고 있다. 황소에 밀려나고 포장도로에 밀려나 역사의 뒤안길에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황소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 경운기의 위력에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려서 황소를 타고 가던 친구를 보면 엄청나게 부러웠는데 이제는 추억한 한 구석에만 머물러 있다. 요즘의 아이들은 황소라고 해도 잘 모르고 수소라고 써도 잘 모른다. 수소라고 쓰면 산소, 수소, 탄소 등의 수소(H)로 생각한다.

어법에 맞지도 않는 햇님, 숫소라고 쓰는 아이들도 많다. 어법상 해님과 수소가 맞다. 언어도 변하고 어법도 변하는 지라 예순이 넘은 사람들은 한국어 쓰기도 두렵고 젊은이와 대화하기도 어렵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옳지만 뿌리도 없는 어휘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언어는 그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