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단골, 당골 그리고 화랑
단군, 단골, 당골 그리고 화랑
  • 도움뉴스
  • 승인 2019.03.18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칭키즈칸’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갖은 고초를 겪은 테무진이 사람 모형의 큰 바위 사이에 들어가서 울부짖으며 누군가를 부른다. ‘텡그리신이여!!’라고 계속 외치면서 신탁을 기다리는 모습이 가슴을 울렸다. 그가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텡그리’신은 과연 어떤 신이었을까?  

우리말을 비롯해서 알타이어권에 있는 단어 중에 ‘칸’이나 ‘한’은 뛰어난 위정자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다. 말한, 마립간, 각간, 태대각간 등에 들어 있는 ‘간(한)’이 칭키즈칸에 있는 ‘칸’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갖은 고초를 겪어야 하고 영적으로 타계에 다녀오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그 시대의 지도자로 우뚝 서 후세의 추앙을 받는다.  

 ‘칭기츠칸’이 그렇게 애타게 부르던 ‘텡그리’신은 멀리 수메르어까지 올라간다. 물론 알타이어권 전역에 퍼져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 영화에서 텡그리는 ‘하늘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Tengri’는 “튀르크 · 몽골 · 퉁구스계 주민들이 하늘 또는 신(神)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북아시아에 사는 여러 민족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서 주로 신격화된 하늘, 즉 샤머니즘에서 최고신을 나타낸다. 북아시아 주민들은 원래 하늘을 지칭할 때 신격화된 하늘, 즉 신과 자연 상태의 하늘을 나타낼 때에는 다른 단어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다.(정재훈, 역사용어사전) 즉 우리와 동일한 언어계에 속하는 터키어에서도 텡그리라는 단어를 하늘신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텡그리가 당고르로 변하면서 우리나라에 와서는 당골, 단골, 단군으로 음차되어 사용되었다.

우리의 옛문헌을 보아도 단군을 檀君과 壇君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볼 때 단군이 우리 고유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용한 글자가 두 종류임은 그것이 가차문자임을 나타낸다.  결국 당고르는 당골(귀신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로 바뀌었고, 다시 당골은 단골(늘 정해 놓고 거래를 하는 곳, 늘 정해 놓고 거래를 하는 손님)으로 변하였다. 당골님은 집에 자주 오는 귀한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거나, 병이 났을 때, 초상을 치를 때, 결혼을 할 때 등등 길흉화복의 많은 행사에 자주 오는 귀한 분이었다. 이러한 당골을 글자로 표기해야 하는데 국자(한글)가 없던 시절인지라 한자를 차용하여 표기하다 보니 학자에 따라서 혹자는 檀君이라 쓰고 혹자는 壇君이라고 썼다.

터키, 몽골 등 퉁구스어 계통의 언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하늘의 위대한 자손이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위대한 인물(무당(巫堂)’로 바뀌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제사장의 권위는 위정자와 일치한다.

제정일치의 시대였기에 제사장이 곧 위정자가 된다. 그래서 단군이 고조선을 세워서 초대 임금이 되었다. 단군은 실제로 제사장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흔히 단군이라고 하면 수염이 긴 우리의 조상할아버지를 연상하게 되는데 실상은 제사장(무당(巫堂)이라는 단순한 명사였던 것이다. 동일한 발상으로 ‘화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유신시대 군사문화의 유산으로 우리는 화랑이라고 하면 젊은 군인집단을 생각한다.

교과서에 실려있는 화랑을 보면 ‘화랑관창’, ‘화랑 원술랑’, ‘화랑 사담함’, ‘화랑 김유신’ 등 전쟁에 공훈을 세운 인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신라에서 생불로 추앙받았던 화랑은 남랑, 술랑, 안상, 영랑 등의 사선이다. 이들이 놀다 가면 ‘사선대’라 칭하고, 영랑이 놀다 가면 ‘영랑호, 영랑재’ 등으로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을지로, 퇴계로, 율곡로 등과 같이 길에 성현의 이름을 붙여 그들을 기리는 것과 같이 신라시대에는 이 네 분의 화랑을 신선으로 섬겨 그 이름을 마을 이름에 붙였다. 이들은 살아있는 신선이었다. 신라에서는 미모의 남자를 취하여 화장을 하고 화랑이라 하여 그들을 받들었다. 이들은 주로 영적인 지도자(무당(巫堂)였던 것이다.

도의를 닦고, 풍류를 즐기고 산수를 두루 다니며 놀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유람을 하면서 영육간의 수양을 닦았던 인재들이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의 유명인들은 거의 이 무리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동리의 소설에 <화랑의 후예>가 있다. 무당의 자녀 이야기다. 우리 할머니들이 흔히 하던 욕 중에 “이 화랭이 새끼야!(이 화랑의 자식아! -> 이 무당 새끼야!)”라는 욕이 있다. 이렇게 보면 화랑 또한 무당이다. 언어는 늘 변한다.

많은 독자들이 단군을 무당(제사장)이라고 하니 혼란스러워할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바로 알아야 하겠기에 이 글을 쓴다. 우리말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