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레자식과 화냥년
후레자식과 화냥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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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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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김용택(1948~ )시인의 <섬진강>이라는 시를 읽다 보면 “~~(전략),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면 /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 고갯짓을 바라보며 / 저무는 섬진강변을 따라가며 보라 /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는 구절이 있다.

마지막 구절에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라는 시어가 있다. 우리는 과거에 후레자식(혹은 호래자식)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 질문했더니 호로(胡虜)자식에서 나온 말이며 오랑캐의 자식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다. 그 이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섬진강이라는 시를 읽으니 후레자식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옛일을 상기하게 되었다. 우선 사전적 의미로는 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으며, 호래자식과 의미가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애비 없는 후레자식과 같이 앞에 대부분 아비 없는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김용택의 시에도 예외 없이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호로(胡虜)자식과 아비 없는 자식이 어떻게 의미가 연결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자. 우선 후레자식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홀어미나 홀아비 밑에서 자라 보고 배운 것이 부족하여 홀의 자식에서 나왔다는 설과 또 하나는 예의범절이라고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오랑캐 노비의 자식과 같다는 의미로 호로자식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결국 그 의미는 보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보는 표현이다.

원나라나 청나라 때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젊은 여성들을 많이 잡아갔다고 한다. 그 때 갖은 고초를 다 겪고 고향으로 돌아 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을 일컬어 화냥년(還鄕女환향녀 -> 화냥년)이라고 했다고 한다.

갖은 학설이 많지만 환향녀의 유래가 원나라에 있는지는 정확하게 문헌에 나타난 것이 없다. 물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도 많이 끌려 갔지만 당시의 문헌에도 환향에 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다만 환향한 여인들이 홍제원(洪濟院) 밖에 있는 냇물에서 더렵혀진 몸을 씻는 것으로 모든 것을 불문에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는 정절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라 아무리 홍제원 밖의 냇물에 씻었다고 할지라도 곱게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절을 잃은 사람들을 환향녀라고 부르다가 요즘처럼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으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들이 돌아와서 아이들 낳게 되면 바로 호로자식(오랑캐의 자식)이 된다. 그러므로 환향녀의 자식이 호로자식인 경우가 많았다는 설이 많이 알려져 있다.

이제 필자의 주장을 펼쳐보고자 한다.

병자호란 이전에도 이미 환향이라는 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이미 원나라에서 비롯된 단어로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몽고에서는 많은 고려의 여인들을 원했고, 그 중에서 타국에서의 노비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환향한 여인들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환향은 이미 그 유래가 오래 되었고, 또한 중국어의 花 娘이라는 단어와 연계해서 살펴볼 수 있다. 화낭(花娘)의 실제 중국어 발음이 화냥임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조항범, 우리말 어원이야기) 예전부터 중국에서는 기생이나 첩을 화냥이라고 불렀다. 그 의미도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게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을 지칭하고 있음을 볼 때 화냥년의 유래는 중국어와 동일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다만 언어라는 것은 시대상황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려시대의 환향과의 관계를 전혀 무시할 수 없다. 환향해서 낳은 자식이 결국은 아비 없이 자랐을 것이고,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홀의 자식’(과부의 자식, 오랑캐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시 모음변이로 인하여 후레자식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즘 국적 없는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TV 오락 프로그램이 오히려 언어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쓰는 지혜로운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