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醬-臺)에 대한 단상(斷想)
장독대(醬-臺)에 대한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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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3.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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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염재균/ 병역명문가

 

 

 여러 가지 장류가 담긴 독과 항아리 등을 놓아두는 곳으로, 아파트 문화와 핵가족화 되기 이전인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인 80년대 이전에는 가정에서는 필수적인 음식인 저장용 식품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또한, 정월 대보름이나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소원을 빌 때 정화수(井華水) 떠다 놓고 어머니가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 손 모아 정성을 다하는 장소였으며, 집안의 액운을 막기 위해 수수팥떡을 놓아 둔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장독대는 대체로 햇볕이 잘 드는 동편에 마련하는데, 대지가 넓은 집은 뒷마당에 만들고, 좁은 집에서는 앞마당에 만들었다. 초기에는 돌을 23층 쌓아서 12평의 높다란 대()를 만들고, 맨 뒷줄에는 큰독, 중간에는 중들이(中入里), 앞줄에는 항아리를 늘어놓았다.

이후에는 돌 대신 블록과 시멘트로 된 장독대를 만들어 사용했다.

가장 큰 독은 장독으로 쓰고, 중들이는 된장·막장 등을 담아 두며 앞줄의 작은 항아리에는 고추장· 장아찌류를 담았다.

고추장 항아리는 대개 키가 작고 복부(腹部)가 위아래보다 크며, 구경이 넓어서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순창의 고추장 마을에 가면 대규모로 질서정연하게 놓여 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장독대의 규모는 집안 살림의 규모가 클수록 커서 한 줄에 45개씩 놓기도 하는데 방송에서 소개되는 이름 있는 가문의 장손집안의 장독대를 보면 장류가 대를 이어 전통을 보존하고 가꾸는 정성이 대단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연해진다.

오늘날의 장독대의 용도는 매실. 청국장. 된장. 고추장 . 장아찌류 등의 단일 종류만을 대량으로 만들어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으니,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장독에는 여러 종류의 장류가 있는데,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지방마다 집집마다 특색 있는 음식 맛이 차이가 나는 건 만드는 사람의 손맛에서 온다고 맛의 장인이나 생전의 어머님은 정성과 장독관리의 차이에서 온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어머님들은 양지바른 곳에 놓인 장독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일 장독을 정성을 다해 닦고 주변을 쓸고 아름다운 꽃을 심어 가꾸고 지켜왔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습은 산업의 발달로 인한 핵가족화와 혼자 사는 나홀로족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옛날 일이 되었고 집에서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아닌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요즘의 생활에서는 집밥의 대명사인 어머님의 손맛은 그리움으로 남게 되었다.

아파트가 생활공간이 되고 김치냉장고가 저장고 역할을 대신하면서 음식용기의 재질도 플라스틱과 유리로 대체되어, 많은 장독들이 사라져버리거나, 장식품으로 음식점이나 개인의 취미를 위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일부 지각 있는 사람은 고풍스런 한옥을 지으면서 생겨난 마당을 장식하려거나, 건강한 먹을거리를 고민하며 제대로 만들어진 장독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전국의 골동품 가게나 농촌의 빈집을 찾아 헤매거나 옹기를 제조하고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등 제대로 된 장독 하나 가지고 싶은 시대에 살고 있다. 필자가 어릴 적 살았던 고향집에는 늙으신 아버지가 혼자 살고 계시는데, 어머니가 14년 전에 돌아가신 이후 장독대는 주인을 잃고 기능을 상실한 채 지금은 빈 장독만이 우두커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겨울의 꽃인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텅 빈 장독대에도 소복소복 쌓여 눈사람이 되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예전에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장독관리를 하고 손맛을 통해 온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주시던 그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사진 김용복 극작가
사진 김용복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