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홍치마가 좋아!(18금)
난 다홍치마가 좋아!(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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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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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예전에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정훈(1911 ~ 1992)의 ‘동백’이라는 시를 배웠다. “백설이 눈부신 / 하늘 한 모서리 /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 차가울사록 / 사모치는 정화 / 그 뉘를 사모하기에 /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자유문학 1939. 3>)라는 작품이다. 동백이 피는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라고 표현했을까 하면서 작가의 놀라운 발상에 감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홍’색이 무슨 색일까 하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동백의 붉은 색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그 색깔이 짙붉은 색이 아닐까 상상할 뿐이었다. 사전에는 ‘빨강에 노랑이 약간 섞인 산뜻하게 짙은 붉은 빛’이라고 되어 있다.

사전을 보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영어로는 ‘deep red’란다. 짙붉은색이라고나 할까? 한글을 공부하면서 다홍색을 찾아보니 ‘다홍 = 大紅(중국어 따홍)’은 중국어가 그대로 우리말에 반영된 것이었다. 원래는 ‘대홍’인데 중국사람들이 ‘따홍’이라고 발음하니까 그대로 우리말에 적용되어 ‘다홍’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한 붉은 색’이 맞을 것이다. 동백꽃의 색깔이니 ‘大紅’색이라면 가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말에도 보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도 다홍색이 나온다. 다홍치마를 입은 여인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짙붉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이라! 한자로는 ‘同價紅裳’이라 하여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색이 많이 있을 터인데 왜 하필이면 짙붉은 치마만 고집할까? ‘여러 가지 중에 가능하면 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지만 그 내면에는 음흉한 남정네들의 속셈이 드러나 있다. 여기서 붉은 치마를 입은 여성은 처녀를 상징한다. 아마도 처녀들이 즐겨 입던 옷이 붉은 치마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푸른 치마는 누가 입었을까? 우리는 흔히 청상과부(靑孀寡婦)라는 말을 한다. 꽃다운 나이에 과부가 된 여인을 말한다. 이 말을 청상(靑裳)과 동일하게 생각하여 기생의 의미와 혼용하기도 한다. 앞에 쓴 청상(靑孀)은 ‘홀어미’(과부)라는 말이고 뒤에 쓴 청상(靑裳)은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말로 기생’을 뜻한다.

과부는 부담스럽고 기생은 돈이 들어가니 선비들이 함께 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결혼 안 한 젊은 여인이 함께 놀기에 좋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을 때는 ‘이왕이면 처녀와 노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우리 옛 속담에 ‘늙은 말이 해콩 좋아한다.’, ‘늙은 말이 콩 마다하랴.’와 같이 음흉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 말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른 남성들의 성적인 욕심이 드러난 글이다.

글자(문자, 단어)를 만든 사람이 남성들임을 감안한다면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여성에 관한 글자는 별로 좋은 것이 없다. 한자에도 녀(女)자가 붙은 글자는 ‘호(好)’자 빼고 좋은 의미의 글자가 별로 없다. 간(奸 : 범하다, 간통하다), 간(姦 : 간사하다, 옳지 않다) 요(妖 : 요사스럽다, 괴이하다) 등의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다. 미망인(未亡人 :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은 사람), 과부(寡婦 : 덕이 적어서 남편을 먼저 보낸 부인),며느리(아들에게 기생하는 사람), 며느리발톱(새끼발가락의 바깥쪽에 덧나 있는-기생하는- 작은 발톱) 등과 같이 여성과 관련된 단어는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말을 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중심으로 하게 되어 있다. 대화할 때도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의 말을 어떻게 전할까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말을 하면 좋을 것 같다.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 : 18)라는 문장이 있다. 사람들은 아담이 하와(이브)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문장을 자세히 보면 하와가 더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강자만이 약자를 도울 수 있다. 6·25 때 미국이 우리나라를 돕지 않았던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이니라!



사족 : 요즘은 말장난이 너무 심하다. 우리나라 경제가 마이너스(-)성장했단다. 이게 뭔 소리여? 그냥 후퇴했다고 하든지 퇴보했다고 하지 굳이 성장이라는 표현을 써서 국민을 우롱해도 되는 것인가?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