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염병 그리고…
지랄, 염병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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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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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지역에 따라 욕이 되는 단어가 있다. 경기도 여주가 고향인 필자는 어려서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표현을 많이 들었다. 친구들과 장난하다가도 뭔가 맘에 들지 않거나 잘못된 행동을 하면 “지랄한다,”혹은 “지랄을 해요.”라고 하면서 핀잔을 주었다.  당시에는 그저 친구들 놀릴 때 하는 말로 알고 사용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욕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려서는 평범하게 농담조로 이야기 하던 것인데, 태능중학교에 처음 발령받아서 아이들과 즐기면서 수업을 하는 중 ‘지랄’이라는 표현을 했더니 아이들이 기겁을 하였다. 서울에서는 그것이 심한 욕이라는 것이었다. 충청도에서는 ‘지랄지랄’하면서 평범한 우스갯소리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서울에 오니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으로 바뀐 것이다.

 ‘지랄’이라는 말은 <동한역어(東韓譯語)>(古今釋林 卷之28)에 의하면 ‘간질을 일반에서는 질알(俗稱 肝疾爲窒斡)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간질(癎疾)을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의학용어로는 ‘뇌전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간질이라는 말은 뇌에서 생기는 질환으로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과도한 흥분상태를 나타냄으로써 의식의 소실이나 발작, 행동의 변화 등 뇌기능의 일시적 마비 증상을 나타내는 현상을 말한다.(서울 아산병원 제공) 이러한 경련이 만성적이거나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우리는 간질이라고 한다. 

결국 좋지 않은 병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간질에 걸려서 발작하는 증세를 일컫는 말이 질알(지랄)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기인하여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발작을 일으키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을 일반인에게 적용해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사용하게 되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유머 감각이 뛰어난 것인지 지랄병에 대해 둔감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금의 언어기원을 따져 본다면 질병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필자도 충청도에 오래 살다 보니 지랄에 대해 한 번도 욕이라고 생각하고 써 본 적은 없다. 그냥 친구나 제자들 핀잔주기 쉬운 말로 사용한 적이 많았다.(요즘 연구에 의하면 뇌전증을 고칠 수 있는 약재가 대마에서 추출된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다. 우리나라에서 대마초는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을 터인데 어찌 연구해야 간질을 고칠 수 있을까? 의약용 대마는 연구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지랄을 없애는 길이 된다면 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

 지랄 다음으로 많이 쓰는 말이 ‘염병(옘병)’이 아닐까 한다. 흔히 붙여서 “옘병,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많이 사용한다. 마치 서로 호응 관계의 단어인 양 쓰고 있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발어사처럼 쓰였고, 하나는 동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염병 또한 전염병의 이름이다.  ‘장티푸스’라고 하는 병이다. 설사를 동반하고 열이 나기도 한다. 장티푸스는 살모넬라 타이피균(Salmonella typhi)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환으로 발열과 복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 급성 전신 감염질환이다.(아산병원 제공) 한자로는 염병(染病)이라고 쓴다.

 그러므로 염병(옘병)이을 독립어나 발어사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염병할 놈’이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염병을 앓을 놈’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예방접종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전염병에 걸리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기에 악담을 할 때 ‘염병을 앓을 놈’이라고 했던 것이다. 참고로 ‘걸린 병과 난병’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흔히 우리는 ‘감기에 걸렸다.’고 하고 ‘몸살이 났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은 걸린 병이고, 어떤 것은 난 병인가? 답은 간단하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은 ‘걸린 병’이고, 내부에서 비롯된 것은 ‘난 병’이다. 감기는 외부의 바이러스가 침입해서 시작되었기에 감기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한편 몸살은 스스로 몸을 혹사하여 내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몸살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염병은 걸린 병일까 난 병일까? 외부의 병원균이 침입해서 생긴 병이니 당연히 걸린 병이다. ‘장티푸스 걸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염병 앓을 놈, 장티푸스 걸릴 놈”등과 같이 표현해야 옳은 말이다.

생활 속에서 남에게 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시원하게 욕을 함으로써 카타르시스 하는 맛을 느끼기도 한다. 욕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려서 하는 지혜는 필요하다. 이제는 걸린 병과 난 병도 구별하면서 바른 언어를 구사해 보자.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