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顧問)과 자문(諮問)
고문(顧問)과 자문(諮問)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09.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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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오래 전의 일이다. 학회가 끝나고 한국어학과 교수들끼리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은 토론이 지나치게 길고 진지해서 모두 지쳐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신라면’의 발음에 관한 토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라면’의 발음이 ‘실라면’이냐, ‘신나면’이냐를 놓고 엄청나게 논쟁을 벌였다. 3시간 정도 끝없는 논쟁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하니 모두 지쳐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는 학교의 젊은 교수가 드디어 찌증을 부렸다. ‘신라면’의 발음 얘기 끝에서 ‘고문’과 ‘자문’의 뜻을 몰라서 주변에 있는 교수들을 보고 소리를 쳤다. “ A – C, 도대체 고문은 뭐고 자문은 뭐야?”라고 하는데 주변에 있는 교수들이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필자는 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터라 명확하게 그 뜻을 알고 있었다. “응, 고문(顧問)은 ‘윗사람에게 묻는 것이고, 자문(諮問)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예요.” 하고 대답을 해 줬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필자의 해박함(?)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 하려면 한문을 해야 해요.”하고 한 마디 더 하고 마무리 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 한국어 명사의 대부분은 한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자어 공부가 어휘 학습에 큰 도움을 준다.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학생회에서 가끔 축제용 글을 써 달라고 한다. 그 때 학생들이 하는 말이 “교수님! 자문을 구하려고 왔어요.” 하고 말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러면 필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의 어휘를 수정해 준다. “‘교수님!’이라는 말은 호칭이 아니고 직책명이다. 그러므로 나를 부를 때는 “선생님” 하고 불러라. 고등학교 교사를 “교사님!” 하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다음으로 ‘자문’은 ‘아랫사람에게 묻는다’는 뜻이니 그냥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어요.’ 라고 하렴.” 하고 처음부터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러면 학생들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문(顧問)은 ①의견을 들음, ②전문적인 지식과 학식 또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국가나 회사 단체 등에서 의논의 대상이 되어 조언을 하는 직책,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고, 자문(諮問)은 ①일을 바르게 처리하려고 전문가 또는 그런 사람들로 된 기관이나 단체에 의견을 물음, 또는 그 묻는 일 ②관청 공서 같은 기관이나 단체 또는 그 책임자가 집무상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하급관청, 공서(公署) 또는 공무원의 의견을 들음, 또는 그 묻는 일’(교육도서, 국어대사전)이라고 사전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전문가에게 묻는 일이라는 의미는 동일하지만 고문은 주로 조언 목적이 강하고, 자문은 전문적인 일을 하급기관(하급자)에게 묻는 일의 의미가 강하다. 대통령은 가장 높은 직책이기 때문에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두는 것인데, 이것이 두루 퍼져서 여기저기서 자문위원회를 두는 것이 유행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필자는 대학에 근무하기 위해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왔다. 학교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산군에서 우리 학교 총장에게 ‘군정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공문을 보내 왔다. 당시는 자방자치제 시행 초기이고 금산군수의 직급이 서기관하고 부이사관 중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장은 거의 장·차관에 준하는 직급인데 군수가 총장에게 자문을 구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담당 공무원에게 자문위원의 의미를 알려주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필자는 한국어를 전공한 관계로 각 기관에서 한국어 또는 문학 관련 일에 많이 관여(關與)하였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자문위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금산군 국악협회 자문위원, 금산 문인협회 자문위원, 대통령 자문위원 등등 총 자문위원만 30 여개가 넘었다. 오호 애재라! 필자가 금산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누구나 자문을 구한다고 하니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이라 모두 수락한 것이 결국 가장 낮은 곳에 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냥 예우 차원에서 자문위원으로 삼은 것 같은데 필자가 볼 때는 그래도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겸손하게 살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여전이 많은 자문위원 직책을 지니고 있다.

환갑이 넘었으니 이제는 고문(고문 拷問?)(顧問)당하며 살아도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