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과 마중
배웅과 마중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19.10.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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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오늘은 독자의 권유로 ‘배웅’과 ‘마중’에 관해 서술해 보고자 한다. 의미상 서로 맞서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혼동해서 쓰고 있다. 예전에 어느 TV뉴스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나왔다. 오래 전 일이지만 그 때를 되새겨 본다.

 

 “오늘은 미국으로 출국하시는 000대통령을 000국무총리가 서울공항으로 출영(出迎)나갔습니다.”

라고 하였다. 자막에도 분명히 ‘출영(出迎)’이라고 떴다. ‘출영(出迎)’이라는 말은 ‘나가서 맞이함’이라는 뜻이고, 동사로 쓰면 ‘출영하다’라고 하며 ‘나가서 맞이하다’라고 뜻풀이한다. 지금 출국하는 사람인데 ‘맞이하러 것’이 말이 되는가? 이럴 때는 배웅이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좀 안다고(?) 한자로 쓴 것이 오류를 만들고 말았다. 지나친 현학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라고 하겠다.

 배웅과 마중은 뜻이 서로 상대적인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위의 경우처럼 잘못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배웅’이라고 써야 할 때 ‘마중’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많다. ‘배웅’은 ‘떠나가는 손님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나가서 작별하여 보내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삼촌은 친구 배웅하러 외출하셨다.”과 같이 쓸 수 있고, 또 “인천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왔다.” 혹은 “주인 여인이 뒤꼍에서 달려와 사립문 밖까지 정중하게 배웅을 했다.”< 출처 : 황순원, 일월>[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등과 같다.

 ‘배웅’은 ‘바래다’(바 + 래 = 배)가 ‘배’로 바뀌고 ‘웅’이란 접사가 붙어 만들어졌는데, 하나의 단어로 굳어져 합성어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웅’이라는 접사는 ‘집웅=> 지붕’, ‘맞웅 =>마중’과 같은 단어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붕과 배웅에서는 의미의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 현대어에 와서는 그 파생력을 잃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전에 등재된 방식을 보면 ‘배-웅’이 아니라 ‘배웅’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웅'은 '배+-웅'으로 '맞+-웅'처럼 어원상으로는 어근 '배'+ 접사 '-웅'으로 분석할 수 있다.

 

 계속해서 ‘마중’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마중’은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함’이라고 되어 있고, 동사로는 ‘마중하다’로 ‘오는 사람을 나가서 맞이하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마중’ 또한 ‘맞 + 웅 = 마중’으로 굳어진 것이지만 배웅과 마찬가지로 이미 굳어진 상태로 인정하여 ‘맞 –웅’이라고 하지 않고 ‘마중’이라고 등재하였다. 용례를 살펴보면 “상륙하려고 갑판에 줄지어 섰을 때 보니 부두에는 마중 나온 것 같은 사람의 그림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장용학, 위사가 보이는 풍경>와 같이 쓸 수 있다. ('배웅'과 '마중, 지붕'의 '-웅'의 존재를 밝히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어근에 '-이', '-음'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근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한글 맞춤법' 제4장 형태에 관한 것, 제3절, 제19항 붙임, 제20항 붙임 규정을 참고하면 된다.) 어원은 ‘맞이하다’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하지만 이미 굳어진 것으로 어형을 밝혀서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말 배웅이나 마중은 한자로 표기하면 약간의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출영(出迎)과 마중, 그리고 배웅과 전송(餞送)을 보면, 전송(餞送)은 ‘떠나는 사람을 전별하여 보냄’이라고 되어 있는데, 보통 전송할 때는 터미널이나 역까지 함께 가 주는 것(?)의 느낌이 강하고 배웅은 ‘집 앞에서 해도 무방(?)’한 감이 있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한자로 쓰면 격식적인 문체의 느낌이 강하고 우리말로 배웅이라고 했을 때는 격식에서 벗어난 편한 느낌을 준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우리말(한글)은 한자어의 세력에 밀려나게 되었다. 한자어를 쓰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지난 번에 쓴 것처럼 노인과 늙은이, 여자와 계집,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 전송과 배웅, 출영과 마중 등등을 살펴보면 우리의 언어생활에 반성할 것이 참으로 많다.

 언어는 사회성이 강하다. 언중이 사용했을 때 비로소 단어로서 자격을 인정받는다.(비행기 =>날틀, 라디오=>소리통 등을 통해 언중의 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막중한 임무를 지닌 사람들이다. 좋은 말을 바르게 살려 쓸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