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약과 지사제
설사약과 지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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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1.0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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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사진 최태호 중부대학교 교수

 

 오늘은 박사들도 헷갈리는 우리말을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약이름에서 헷갈리는 것이 많다. ‘변비약’은 ‘변비를 생기게 하는 약’인지, ‘변비를 고치는 약’인지 이름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설사약’도 ‘설사를 하게 하는 약’인지 ‘설사를 멎게 하는 약’인지 이름만 보아서는 알기 어렵다. 제일 정신없게 만드는 것이 ‘피로회복제’다. ‘피로회복’에 ‘박x스’라고 광고하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필자도 어려서부터 듣던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문이 생기는 것은 ‘피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 같은데, 문구대로 해석하면 피로하게 해 주는 약’이다. 왜냐하면 회복이라고 하면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이라는 의미이므로 직역하면 “다시 피로하게 해 준다.”‘는 뜻이다. 다시 피로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너도나도 학교에 갈 때면 한 통 씩 들고 가던 것이 아닌가? 참으로 재미있는 우리말이다. 선생님들 피로해지라고 하는 음료수를 갖다 드리면서 “우리 아이 잘 부탁합니다.”라고 하니 웃기지 않을 수가 없다. 다행히 요즘은 원기회복이라는 말로 바꾼 것 같다. 원기를 회복해야지 피로를 회복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같은 계열의 말로 ‘피로가 축적되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축적’은 ‘의도적으로 모아서 쌓은 것’이다. 독자 중에 누가 피로를 의도적으로 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까? 피로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누적(累積)’이라고 써야 한다. 즉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쌓인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적된 피로를 없애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마시는 ‘원기회복제’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필자가 어려서는 설사도 자주 했다. 물을 끓여먹지 않고 그냥 마시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식중독이나 콜레라 같은 병도 많았다. 그럴 때면 항상 약국에 가서 ‘설사약(泄瀉藥)’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 약사는 다 알아 듣고 ‘지사제(止瀉劑)’를 주었다. ‘설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의학> 변에 수분의 양이 많아져서 변이 액상(液狀)으로 된 경우, 또는 그 변. 소화불량이나 세균 감염으로 인해 장에서 물과 염분 따위가 충분히 흡수되지 않을 때나 소장이나 대장으로부터의 분비액이 늘어나거나 장관(腸管)의 꿈틀 운동이 활발해졌을 때 일어난다.”고 되어 있다. 한편 ‘설사약’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1)<약학>[같은 말]지사제(止瀉劑)(설사를 멎게 하는 약), 2.<약학>[같은 말]하제(下劑)(설사가 나게 하는 약)”이라고 되어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반대되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다. 글자 그대로 풀어 보면 ‘설사를 멎게 하려고 먹는 약도 설사약’이고 ‘설사를 하게 하는 약도 설사약’이라고 한다. 한자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지사제(止瀉劑)’라는 말로 할 수 있는데, 오래 전부터 설사약이라고 해 왔으니 쉽게 바꿀 수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설사약’도 한자어이기는 하지만 의미가 불확실하니 이 부분은 지사제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본다.

같은 의미에서 변비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변비를 고치는 약인지, 변비가 생기게 하는 약’인지 애매하다. 변비(便秘)는 ‘대변이 대장 속에 오래 맺혀 있고, 잘 누어지지 아니하는 병’이다. 그러므로 변비약은 ‘대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배변이 드물 때 쓰는 약’이라고 볼 수 있다. ‘감기약’이 감기를 고치는 병‘이므로 설사약이나 변비약이 그리 문제 될 것은 없으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즉 약의 이름을 정할 때 정확하게 의미를 살려서 써야한다는 말이다. 설사를 하게 하는 것인지, 설사를 멎게 하는 것인지 밝혀야지 두 가지 의미를 다 담고 있으면 백성들은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

한자어로 단어를 만들 때는 한자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써야 하며, 순한글로 지을 때는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하여 사용자가 바로 알 수 있게 작명해야 한다.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는 한자를 병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지사제’라고 하면 몇 명이 알아들을지 궁금하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필자는 한글전용보다는 국한문혼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