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기만 하던 노인? 이젠 우리가 베풉니다"… 대전 천동 아파트서 꽃핀 '자립형 경로축제'
 "받기만 하던 노인? 이젠 우리가 베풉니다"… 대전 천동 아파트서 꽃핀 '자립형 경로축제'
  • 하을호 기자
  • 승인 2026.10.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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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官) 주도 벗어나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재능기부로 무대 꾸며
- 상인·병원·새마을금고 등 지역사회 '십시일반' 후원으로 화답
- "전국 최초 자립형 모델… 초고령 사회 새로운 '경로의 달' 대안 될 것"

10월 ‘경로의 달’을 맞아 관 주도의 천편일률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노인들이 직접 재능기부를 통해 기획하고 지역 주민이 십시일반 힘을 보탠 자립형 마을 축제가 열려 전국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7일 대전 동구 천동휴먼시아아파트 공원. 아파트 거주 어르신과 주민 등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2026 천동휴먼시아 아파트 경로위안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행사장 곳곳에는 흥겨운 풍물 가락과 노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겉보기엔 여느 경로잔치와 다를 바 없지만, 이 행사의 탄생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각별하다. 지자체의 예산 지원에 기대지 않고, 경로당 어르신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여 만든 ‘우리 손으로 만드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주도한 최정균 천동휴먼시아2단지 경로당 노인회장은 “그동안 노인은 대접받는 세대였지만, 이제는 우리 삶 속에 깃든 지혜와 재능을 지역사회와 나누며 축제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라며 “어르신들의 손과 마음으로 직접 일궈낸 뜻깊은 자리”라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9개 팀, 60여 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모두 ‘재능기부’로 무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은 80세 어르신의 열창부터 민요, 색소폰, 라인댄스, 각설이 타령 등 다채로운 무대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특히 중국에서 직접 변검술을 전수받은 김덕례 변검 전수자는 이번 행사 기획의 일등 공신이다. 그는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대규모 무료 공연단을 꾸렸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6개의 대북 공연으로 행사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변검을 하고 있는 김덕례 외 1
변검을 하고 있는 김덕례 외 1

노인들의 헌신적인 자립 의지에 지역사회도 적극 화답했다. 동네 마트(휴먼시아할인마트)부터 한마음새마을금고, 충절로신협, 문창신협 등 금융기관, 인근 더나은연합의원과 지역 상인, 효동주민자치위원장, 통장협의회장, 부녀회장 등 마을 구성원 전체가 십시일반 후원에 나섰다. 무대 설치부터 경품 마련까지 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행사에 참여한 공연진들 역시 무료 공연은 물론 물질적 후원까지 아끼지 않으며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행사를 지켜본 지역 인사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황인호 동구청장은 “주민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어르신들이 주도하는 축제를 열었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고 칭찬받아 마땅한 모범 사례”라고 격려했다. 박헌철 대한노인회 대전동구지회장 역시 “노인들이 지혜와 경륜을 바탕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지역사회와 나누는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축복이며, 전국적으로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용순 동구의회 의장은 “이러한 훌륭한 모델이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의회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시대, 수동적인 복지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재능 나눔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거듭난 천동 어르신들의 실험. 정부 지원금 없이 지역 사회의 결속력만으로 빚어낸 이 ‘자립형 노인 축제’가 전국 경로의 달 행사의 새로운 표준 모델로 확산될 수 있을지 사회적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관람하고 있는 모습
마을주민들이 관람하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