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곳 단지 거친 산전수전 베테랑… 늦깎이 국문학도로 등단까지
-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존중하는 아파트 문화 정착되길"
“얼마 전 소셜미디어(SNS) 프로필에 40대 젊은 시절 사진을 올렸더니 지인들이 ‘딸이냐, 예쁘다’고 묻더군요. 그 말이 어찌나 기분 좋던지요.”
만 30년 경력의 이영선 아파트 관리소장은 인터뷰 내내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반평생을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헌신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지만, 주민과 동대표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다. 30년 연륜에서 묻어나는 단단한 대인관계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교 최상위권 수재, 엇갈린 진로에도 놓지 않은 국문학의 꿈
대전 동구 내탑동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이 소장은 학창 시절 내내 전교 1등 언저리를 맴돌던 수재였다. 영동 용문중학교를 거쳐 대전 한밭여중으로 전학 온 뒤에도 전교 800명 중 4등을 차지할 만큼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책상에서 공부하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어서 늘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진로 상담 과정에서 담임 교사의 오판이 그의 10대를 흔들었다. 시골 출신이라는 선입견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 지레짐작한 교사는 대전여고 진학을 희망하던 그에게 취업이 보장되는 대전여상을 강력히 권유했다. “문과에 진학해 국어교사가 되면 좋겠다”던 국어 교사의 칭찬을 가슴에 품고 있던 그에겐 가장 뼈아픈 순간이었다.
이후 공주사대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한 그는, 교사들의 권유에 따라 대전여상과 같은 재단인 경상대학(현 대덕대학) 회계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문학을 향한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훗날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해 학사를 취득하며 꿈에 그리던 국문학을 마음껏 공부했다. 그 결실로 2010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문예지 ‘문예사조’에 수필 ‘부모님 전상서’를 발표하며 정식 작가로 등단했다. 현재 그의 개인 블로그 ‘코스모스와의 대화’에는 단편소설과 에세이 등 100여 편의 작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0만 명 몰린 주택관리사 시험… “차라리 사시 볼 걸 그랬나”
이 소장이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36세 때다. 그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25세에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와 네 살배기 둘째를 키우며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주택관리사 수험서가 널려있고, 발밑에서는 어린아이가 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1년을 매달렸다.
당시 1996년 치러진 주택관리사 시험은 전국에서 무려 10만 명이 응시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초조함 속에서도 그는 최종 합격자 2,500명 중 104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이 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라, 차라리 사법시험을 준비할 걸 그랬나 하는 농담 섞인 후회도 해봤다”며 웃음을 보였다.
주차난 맨몸으로 해결한 뚝심… “전문인으로서의 존중 필요해”
30년 동안 12곳의 아파트 단지를 거친 이 소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유천동 현대아파트 1차 관리소장 시절이다. 당시 극심한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관리소 직원 40명과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단지 내 화단을 주차장으로 개조하는 환경 개선 작업을 직원들의 힘으로 직접 해결해 낸 것이다. 이 소장은 “동대표들과 주민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고마움의 표시로 급여 인상과 격려 물품이 이어졌을 때 관리소장으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흥종합관리 15년, 자치관리 10년, 현재 중앙종합관리 소속으로 5년째 근무 중인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8시 이전에 출근해 하루를 준비한다. 학창 시절의 예습 습관이 직장 생활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30년 차 노련한 베테랑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이 소장은 “가끔 일부 동대표나 주민들이 관리소장을 직무 수행자가 아닌 ‘여자’나 ‘나이’로 대할 때 마음이 아프다”며 “관리소장, 주민, 동대표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소장의 남편 역시 한화생명 퇴직 후 충남 다하리종합관리 소속으로 15년째 보령에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주말이면 전국의 맛집과 아름다운 카페를 찾아 투어하는 것이 ‘관리소장 부부’의 유일한 휴식이자 최고의 행복이다. 엇갈린 진로와 팍팍한 삶의 무게 앞에서도 펜과 수험서를 놓지 않았던 이영선 소장. 그의 치열했던 30년 인생 2막은 지금도 따뜻하고 활기차게 쓰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