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균의방송칼럼,귀농귀촌1번지 희망농촌 제81회 생방송
오노균의방송칼럼,귀농귀촌1번지 희망농촌 제81회 생방송
  • 도움뉴스 기자
  • 승인 2020.01.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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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균의 방송 칼럼>

KBS제1라디오 FM92.1에서 매주 금요일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오노균의 귀농 귀촌 1번지 희망농촌 방송 내용을 게재 합니다.

객원 캐스터 오노균 박사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충청대교수,충북대초빙교수, 한민대 부총장, 대전시 새마을 회장,농식품부 스마일 농촌운동 자문위원등을 역임 하고, 오박사농촌팜스테이(FarmStay)체험마을 인성학교를 10여년전에 설립하여 행복한 농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Hanyang University Nstttute For Future Talents) 겸임교수로 후학을 양성 하고 있다. 또한 태권도 대사범및 사단법인 IMAO 총재로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와 남북교류 협력사업에 공헌하여 대통령 공로상을 받았다 .

-편집자주-

생방송 충청은 지금 2020년 01월 31일 (금)15:10~

귀농.귀촌1번지 [희망 농촌]

방송시간 : 매주 금 17:10~

 

MC> 잘사는 농촌, 활기 넘치는 농촌을 만들어 갑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은 덤으로 얻어가는 귀농.귀촌1번지 <희망농촌> ..

충북대 농촌활성화 지원센터 오노균 부센터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Q1)지난주는 민족 최대의 명절설이 었고 다음주는 정월대보름인데요? 대보름도 명절의 하나이며 매년 음력으로는 1월 15일이잖아요. 설날과 대보름 사이에 하는 민속놀이를 알아보겠는데요

이런 놀이를 통하여 모든 질병이나 액운을 막으며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했다고 하죠?

A)우리 조상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연회를 즐기며 마을 공동체간 단결과 친교활동은 물론 농사의 풍년기원,액운타파,국태민안을 빌었다고 합니다, 설날를 기준으로 하여 노는 대표적인 민속놀이가 윷놀이 인데요. 4개의 윷가락을 던지고 그 결과에 따라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표적 민속놀이인 윷놀이를 소개 하고자 합니다.. 먼저 윷놀이를 한자어로는 ‘사희(柶戱)’라고 합니다. 2인이 대국하여 각각 4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쓰는데, 말 길은 원근(遠近)과 지속(遲速)의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인데요.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는 세 패로 편을 나누어서 놀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민속놀이의 하나로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대보름날까지 노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공동체 전통놀이죠. 이 놀이의 명칭이 윷놀이인 것은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노는 놀이로써 , 도·개·걸·윷·모 중 넷을 뜻하는 윷과 놀이가 복합된 것이라 추측됩니다. 윷의 한자어 사(柶)도 나무막대기 넷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거든요 윷놀이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는 이익(李瀷)은 성호사설, 사희조에서 “윷놀이를 고려의 유속으로 본다.”라고 하였는데 동북아에서 우리나라가 종주국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될수 있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추천해 보고요.... 윷은 영어로도 YUT(윷) 이라고 하고 있고 설날에 논다고 기록 하고 있는데 남북의 민족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남북 윷놀이(척사대회)대회를 추진 한다면 평화분위기 조성에도 기여 할것이고 이어 유네스코에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 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북사와 태평어람등의 문헌에 백제에는 저포·악삭등의 잡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 저포는 오늘날의 윷놀이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윷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또한 , 일본에서도 만엽집 주석의 권위자인 시카모치는 만엽집고의 에서 일복삼향을 ‘고로’, 삼복일향을 ‘시쿠(シク)’라 해온것에 의문을 갖어 오다가 우리 나라의 윷놀이가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우리문화의 윷놀이 문화가 일찍이 일본으로 전파한 것으로 추정 됩니다.

Q2)윷놀이는 정초에 하는 민속 놀이로 전해 지고 있으나 그 본래의 뜻은 세초(歲初)에 농민들이 윷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점치던 고대 농경시대의 유풍의 하나로 보인다고요?

A)산촌(山村)에서는 해마다 정월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산촌의 젊은이들이 모여 높은지대 편과 낮은지대 편의 두 편으로 나뉘어 윷놀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 높은지대 편이 이기면 그해의 농사는 높은지대 편이 잘된다고 하였고, 낮은지대 편이 이기면 낮은지대 편의 농사가 잘된다고 하였다고 하는데요.이 놀이가 끝나면 그들은 마을의 넓은 마당으로 나와서 모심기놀음을 하였는데요, 이러한 습속으로 보아서 윷놀이의 본의는 농사 점으로 하여오던 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 본래의 뜻이 차츰 없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히 유희적인 놀이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리고 이 놀이는 한때 놀이와는 달리 아무 때나 하지 않고,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하다가 거의 예외 없이 이 놀이를 그만두었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보더라도 윷놀이는 일반적으로 아무 때나 하는 놀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농가에서 세초에 행하는 민속점(民俗占)은 이를 방증(傍證)하고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한해 농사 흉,풍를 예단하는 ‘점단’이 아니고 단순히 유희나 도박이라면 연중 아무 때라도 윷몰이를 했어야 될 것인데, 윷놀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세시풍속의 민속놀이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윷놀이는 상대(上代)에 농민들이 목편(木片)으로 해마다 세초에 그해의 풍흉을 점단하는 데 그 뜻이 있었다고 보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농사에 관한 점술과 지술인 점품행위가 대개 세초에 있었던 것이 증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Q3)현도 오박사마을 지게 윷놀이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계승되고 있는 공주 선학리 ‘지게놀이’ 등도 세시풍습으로 큰호응을 얻고 있다면서요?

A)전통의 소중함과 맥을 살리고 문화유산으로 이어 지고 있는 오박사마을 지게 윷놀이를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데요. 이지게윷놀이는 농촌 전통자원 맥잇기 사업으로 광복 70주년에 발굴되었는데 400여년 전통의 보성오씨 집성촌인 현도 오박사마을에서 오랜 기간 문화유산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박사촌 지게윷놀이의 형태를 살펴보면 풍물패 지신 밟기, 윷지게쌓기, 선,후 차례 정하기, 윷지게 지고 칠성돌기, 윷 메치기, 지게풍장과 소리꾼 바람잡기, 힘자랑 학동지게태우기, 풍물패 칠성놀이,네동 빼기.진팀이 이긴팀에 음식과 술를 접대하고 풍물패와 함께 한마당 함께 놀기 등으로 구성 되고 있습니다. 지게윷꾼들의 복장으로 남자는 머리에 하얀띠를 두르고 흰색 중이적삼을 입고, 여자들은 하얀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지게윷놀이를 하는데요, 풍물패는 풍물놀이 복장을 하고 말잽이는 사각 말판과 말을 준비 씁니다. 특히 오박사마을 지게윷놀이에는 마을 풍물패와 함께 소릿꾼의 구성진 현도농요가락으로 시작 하는 것이 특징 입니다. 오박사마을 지게윷놀이도 그 원형을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동네 어르신들이 매년 정월 보름께 푸짐한 지게 윷놀이를 워갬밭과 아래갬밭 주민들이 즐겁게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민속놀이는 전통자원으로 향토음식, 놀이, 설화, 민간요법 등 우리 생활과 의식속에 깊게 뿌리 잡아 왔으나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 잊혀져가는 현실 속에서 세계적으로 자랑할수 있는 4대 발명을 꼽는다면 농촌 주택에 온돌, 음식에 김치, 놀이에 윷놀이를 꼽을수 있거든요. 여기서 지게 역시 우리 겨레가 발명한 가장 우수한 이동수단인 연장 으로, 이와 함께하는 지게윷놀이는 여가문화의 으뜸으로 생각 됩니다. 이렇케 발굴된 오박사마을 지게 윷놀이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최한 ‘2015 농촌 페스티발’ 에서 당시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직접 시연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고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 문화복지 부문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또한 인근 충남 공주에는 ‘선학리지게놀이’라 하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계승되고 있는데요.

Q4)오랜 역사 속에 윷놀이가 이어져 왔다면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수숫대(잎)로 거북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두 명이 들어가서 거북이 흉내를 내며 집집마다 돌며 액운을 없애는 놀이인 "거복놀이"도 명절 때 전해 오고 있지요?

A)우리 조상들은 거북을 학과 더불어 십장생의 하나로 매우 영적인 존재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거북모양의 분장을 하고 풍작과 복을 비는 수단으로 한가위나 정월 대보름에 경기도·충청도 등 한강 이남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행해졌는데요 추위를 이기는 동안 체력, 지구력 등이 길러지게 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거북놀이의 유래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는데요. 다만 《설고총서》라는 문헌에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15세의 공주가 병이 들었는데, 영추대사가 15세 소년들로 하여금 수숫 잎으로 거북의 탈을 만들어 쓰게 하고 유희하며 집 안팎을 깨끗이 쓸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거북놀이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것입니다. 또한 거북놀이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사 가운데 “거북이 압록강을 건너 백두산을 넘어 이천까지 오느라고 배가 고파서 쓰러졌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합니다.

Q5)거북놀이는 충청도 청주·음성·충주지역과 경기도 광주 이천지역. 전라남도 해남에서도 어린이들이 이 놀이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이들을 통해 명절을 맞이하여 거북놀이가 전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A)명절은 남녀노소가 즐겁게 보낼 뿐 아니라 동네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인데요....특히 거북놀이는 준비과정부터 진행과정이 어른신들이 가르치고 아이들이 주역이 되어 집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마을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데 효과적이었을것으로 여겨 집니다 충청지역에서는 고려 8대 현종(玄宗) 때, 나라에 가뭄과 흉년이 계속되어 곳곳에 천안지역에 도둑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현종이 직접 민정을 살피기 위해 각 고을을 순회하였다고하는데요. 그러던 중 직산현에서 하루를 기거하는데 꿈속에서 신라의 문무왕(文武王)이 나타나, 거북을 보낼테니 거북과 더불어 뛰어놀고 민습을 수습하라고 현몽했다고 합니다. 현종은 이튿날 지형을 두루 살펴보고 입장면 구덕리(龜德里;현재 입장면 신덕리 1구)가 거북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이 마을 사람들과 거북놀이를 하였더니 이듬해 볍씨가 수수알처럼 풍성하게 여물어 대풍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이 마을에서 매년 명절을 맞이하여 거북놀이를 하였다고 하여 이곳이 거북놀이의 발생지이며, 이 거북놀이는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바라는 의미에서 전래한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래담은 구전으로 문헌의 정확한 고증이 없는 점이 한계인데요 그러나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인 비(용왕의 사신으로 거북)를 상징하는 거북을 통해, 수확에 대해 감사와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들의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라고 여겨집니다.